결혼 30주년 선물 캠핑카 세계여행4

우리가 라오스에 간 이유.

20년 전 남편은 초등학교 4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몇 달간 동남아시와 중국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결혼 10주년에 가족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했지만 큰 형님네가 IMF로 도산하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어 여행 계획을 대폭 축소하였다. 남편은 먼저 아들을 데리고 아시아를 여행하고 나는 다음 해 대학 동기들과 가기로 한 미국 여행에 딸을 데려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남편이 태국에서 라오스로 들어간다는 소식을 전하고 나서 며칠 동안 소식이 끊겼다. 공산주의 국가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미지 때문에 너무 불안해 안절부절못하고 주위에 수소문해 보았지만 라오스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방송국 기자조차 라오스에 한국인이 방문해도 되는지를 알지 못했다. 나는 남편과 통화가 될 때까지 10여 일간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지옥과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정작 여행에서 돌아온 남편은 여행지 중에서 라오스가 가장 살고 싶은 나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결혼 30주년 세계여행을 앞둔 우리는 라오스를 제2의 신혼여행지로 선택했다. 라오스는 베트남이나 태국과 국경을 마주 하고 있지만 문화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방금 떠나온 베트남에 비해 조용하고 낮은 사람들의 목소리며 눅눅하지 않은 날씨, 거기에 스님들이 맨발로 탁발을 할 수 있도록 아침부터 거리가 참 깨끗하다. 어딜 가나 신께 기구하는 모습이나 흔적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참 평화롭고 순수한 마음이 느껴지는 곳이다. 남편이 살고 싶다고 한 말이 저절로 이해된다.


그러기에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전쟁의 상흔들이 더욱 아프게 느껴진다. 미국은 베트남과 전쟁하며 주변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이 평화로운 땅에 1964년부터 8분 간격으로 매일 9년간 200만 톤의 지뢰를 하늘에서 쏟아부었다고 한다. 당시 라오스의 인구가 200만 명이었으니 1인당 1만 톤의 양이다. 그런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지뢰로 인한 신체장애자들의 재활을 돕고 있는 국제조직인 COPE를 방문했다. 방명록에 조국을 대신해서 용서를 빈다는 말을 남긴 미국인도 보았고,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치는 백인 청년도 보았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없이 참혹한 역사가 너무 충격스럽고 슬펐다.


우리 부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후원을 위해 팔고 있는 물건을 사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아들 성두에게 줄 티셔츠를 골랐는데 라오스 백화점에서 큰 맘먹고 산 남편의 티셔츠보다 조금 비쌌지만 품질이 훨씬 좋다.(그때 가족 티셔츠를 모두 사지 않은 게 좀 후회스럽다.)


우리는 비안티앤에서 루앙프라방, 방비앵, 팍세를 거쳐 다시 비안티엔으로 나오는 여정을 계획했다. 처음으로 3주 이상의 긴 여행을 하며 여행이 구경이 아니라 삶으로 이어지는 경험을 맛보기 시작한 것 같다. 상상해 보지 못한 위기들은 앞으로 여행을 위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신혼일기? 모험 일기?


비안티엔 근교에 있는 불교 조각 공원에 갔을 때 둥근 탑 꼭대기에 올라가는 일부터 모험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는 둥근 지붕 꼭대기는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린다. 진한 황톳빛에 물살마저 센 드넓은 메콩강은 보기만 해도 아찔했지만 용기를 내서 강가로 내려가 물장난도 하고, 남칸 강의 거센 물결 위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 다리를 건너기도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정도는 준비운동에 불과했다.

스쿠터 모험 시작

젊은 시절 남편이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 했지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허락할 수 없다고 일축했었다. 사고로 죽는 것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라오스에서 이것이 깨졌다. 방비앵에서 다른 액티비티를 안 하는 대신 스쿠터 여행을 하자는 남편의 의견을 반박할 수 없었다. 남편이 속도를 늦추겠다고 했고 베트남에서 어린 아기를 한 팔로 데리고 편한 얼굴로 스쿠터를 타던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보기로 했다.


방비앵의 일기 중에서

텔레비전에서 방비앵의 블루라군을 보았을 때 난 온천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의외로 물이 차가웠고 들어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부유물도 많았다. 고소 공포증과 물 공포증이 많은 나는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 결심을 많이 해야 했다. 그래도 세계여행을 앞둔 내가 아닌가! 물놀이도 성공적으로(?) 하고 트래킹 코스도 무사히 마치고 의기양양해졌다. 돌아오는 도중 아무도 없는 벌판 한가운데서 마음껏 포즈를 취하며 한껏 멋진 폼으로 사진을 찍었다. 유심 없이 카메라로만 사용하는 핸드폰으로..

그런데 떠나려고 스쿠터에 올랐는데 갑자기 시동이 안 걸린다. 아무도 없는 벌판은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핸드폰까지 없다. 물놀이할 때 불편할까 봐 일부러 두고 왔었다. 우리의 위험한 상황을 아무에게도 알릴 수 없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벌판에 가로등이 없다는 사실도 눈에 들어왔다. 아직 해가 중천인데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날이라도 어두워지면 어쩌나 불안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 사람들이 좀 지나다닐 만한 곳까지라도 가기로 했다. 스쿠터를 끌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식당이 보였다.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어찌나 반갑던지.. 영어가 한마디도 통하지 않았지만 아주머니께 손짓 발짓으로 사정을 얘기하니 유창한 라오스 말로 스쿠터 주인을 불러주었고 우리가 점심 먹는 사이에 스쿠터를 고치러 와주어서 잘 해결되었다.

나중에 호텔에 돌아와서 보니 가방에 핸드폰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없다고 생각한 편이 차라리 더 좋았다. 서로 능숙하지 못한 영어를 전화로 주고받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갑갑했겠는가! 허허벌판에서 우리 위치를 정확하게 말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 죽어도 괜찮아! 우린 너무 행복하잖아.


방비앵 보다 더 심장이 쫄깃해진 날-팍세에서의 일기

난 지금 두꺼운 호텔 가운을 티셔츠와 바지 위에 입고 푹신한 침대에서 일기를 쓰고 있다. 오늘 아침부터 7시간 정도 겪은 일을 생각하면 이렇게 편히 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진다.

호텔에서 빌려주는 스쿠터는 수동기어였다. 그래서 방비앵에서와는 달리 광민 씨의 운전이 많이 서툴렀다. 그러다 보니 운전하는 것에만 몰두해서 스쿠터를 빌려 받을 때 자세히 살펴보질 못했다. 더구나 오늘은 비까지 내린다. 방비앵 때와 달리 조건이 최악이다. 겁 많은 나 역시 광민 씨의 뒤에서 초긴장상태가 되었다.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길에 가끔씩 커다란 웅덩이가 나타날 때마다 호텔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다 큰길로 나오니 덜컥 겁이 난다. 차들은 커 보이고 속도도 빠르다.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광민 씨가 유턴을 하려는지 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안쪽으로 들어간다. 심장이 졸아 들었다. 그런데 유턴하는 동안 광민 씨가 자꾸 돌아보는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백미러 쪽을 보니 백미러가 없다. 왼쪽만 있고 오른쪽에 없다. 그래서 뒤를 돌아본 것이다. 내가 대신 뒤를 봐줄 수 있나 고개를 돌려봐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순간 심장이 쫄깃거리다 못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광민 씨! 백미러가 없잖아. 빨리 호텔로 돌아가자"

"알았어."


너무 순순히 대답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너무 많이 가는 것 같아서 혹시 호텔로 돌아가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냥 가자는 것이다. 몇 번 강하게 주장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광민 씨는 방향감각이 둔한 나를 가끔 이런 식으로 놀라게 한다. 멀리 여행 가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내게 곧 집에 간다며 강원도에 가버리거나, 강원도 산속에서 절벽 길을 오르내리며 집에 가는 방향이 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했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기는 했으므로.. 오늘도 자기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최대한 빨리 호텔에 돌아온 것이라며...)


이렇게 된 바에 광민 씨를 힘들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광민 씨 마음이 안정될 수 있도록 더 편하게 마음을 고쳐 먹고 오히려 최대한 즐기려고 했다. 사실 그 당시는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절망의 끝엔 언제나 평화가 있다. 우린 지금 죽어도 괜찮아. 우리는 지금 너무 행복하잖아.


그러다 오르막 길에서 엔진이 힘들어한다며 좀 쉬기로 했다. 연료도 생각보다 빨리 소모되어 주유가 필요하다. 그동안 주유소를 많이 지나쳤는데, 혹시 다시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니 네비에 의하면 곧 있으니 걱정 말라고 광민 씨가 나를 안심시킨다. 세계여행에 대비해 연습용으로 가져온 네비가 제법 든든하다. 연료통을 확인하려고 스쿠터의 좌석을 올리니 빈 공간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무거운 것들을 바구니와 의자 아래 짐 칸에 실었다. 가방이 가벼워지니 한결 좋았다. 그리고 속도도 조금씩 익숙해진다.

다행히 주유소는 네비가 가르쳐 준 대로 금방 나타났다. 그런데 비가 갑자기 굵어진다. 주유소에서 비닐을 구해보려 했지만 실패. 이제부터 나타나는 가게에서 비옷을 사기로.. 그동안 몇 개의 가게를 지나면서도 비 옷을 살 생각을 못했다. 방비앵에서도 젖은 채로 스쿠터를 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는 화창한 날씨였고 광민 씨는 젖은 옷을 갈아입었었다. 운전자는 앞에서 바람을 맞기 때문에 체온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어서 위험하다. 우선 아쉬운 대로 모자로 광민 씨의 가슴 부분을 가리고, 나의 두 손과 머리 몸을 이용해 광민 씨가 최대한 젖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그러다가 고맙게 나타난 비옷. 숨겨놓은 선물인양 눈길을 사로잡았다 가격은 두 개에 2만 킵, 삼천 원이다. 불량이라 단추가 맞지 않은데 주인이 고무줄로 묶어주는 모습이 그 와중에도 재밌다. 비록 싼 비옷이지만 난 이 행운의 비옷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비옷을 입은 우리는 이제 훨씬 더 편안해진 맘으로 달릴 수 있었다. 점점 안개가 심해졌지만 점점 가야 할 거리도 짧아졌다. 네비에서 1킬로씩 줄어드는 것이 너무 신났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험한 날씨였지만 폭포에는 생각보다 많은 여행객이 있었다.

참 대단한 사람들! 사람들은 왜 이렇게 풍경에 목숨을 걸까?

폭포 앞에서는 비와는 상관없이 비옷을 입고도 옷이 홀딱 젖을 만큼 물 폭탄을 맞았다. 한여름인데도 덜덜 떨린다. 식당 가운데 벽돌로 쌓아놓은 정방형의 틀 안에 숯불이 있었는데 아주 따뜻하고 좋았다. 신기하게도 벽돌은 뜨거워지지 않아서 더욱 편하게 따뜻함을 즐길 수 있었다.


한 여름에 그것도 라오스에서 불 쬐기라니..

팍세는 라오스에서도 남쪽이라 더위를 걱정했는데 말이다.( 남편이 몇 번이나 고산지대라고 말했다는데 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는 동안 옷도 마르고 날씨도 편안해졌다.

이제 큰길에서 달려도 별로 무섭지 않았다.

지나왔던 길이 힘들수록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훨씬 편하고 짧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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