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얻는 가장 소중한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사람의 정이라고 생각한다. 낯선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은 가난한 여행자일수록 누리는 특권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만일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보다 더 소중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별이님 부부는 우리에게 그런 소중한 선물 같은 분들이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배를 타러 동해에 도착해서 우리처럼 캠핑카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는 조 선생님을 만났다. 기름때가 얼룩진 티셔츠를 입으신 모습이 무척 소탈해 보이셨다. 중고차를 구매해 직접 캠핑카를 제작하셨는데 지금도 마무리 작업을 하시는 중이라고 했다. 게다가 캠핑카 짐을 모두 박스 포장하라는 말에 밤을 새웠지만 아직도 끝내지 못하셔서 포기상태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정작 캠핑카의 경우는 짐을 상자에 따로 쌀 필요는 없어서 두 집 다 헛수고를 한 것이었다. 캠핑카로 나가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직원들도 규정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조 선생님 부부와 배 안에서 1박 2일 을 보내는 동안 살아온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이를 떠나서 허물없는 친구처럼 느껴져서 별명을 지어 불러보자고 제안했다. 이름은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것이니 이제 스스로 불리고 싶은 이름을 지어보자고 했다. 조 선생님은 쑥스러워서 싫다고 하셨고, 아내분은 별이라는 별명을 좋아하신다고 했다. 이렇게 별이님과 인연이 시작되었다.
별이님 부부는 안정된 일자리를 접고 아이들과 자연을 즐기며 살고 싶어서 일찌감치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셨다고 한다. 대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하셨다는 조 선생님은 뉴질랜드로 이민 가셔서 자동차에 관련된 일을 하시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호기심이 많고 만들기에 재능이 많으시다 보니 자동차는 물론 각종 기계에 대해 전문가가 되셨고 가구 제작도 능하셔서 맥가이버란 별명을 얻으셨다고 한다. 별이님이 여행 내내 들고 다니던 카메라 가방도 직접 만드셔서 연애할 때 선물로 받으셨다는데 지금까지 짱짱한 걸 보면 얼마나 꼼꼼하신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바쁘고 힘들지만 서로를 위한 사랑으로 살아오던 두 분의 이야기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특히 타국에서 자녀를 키우며 겪으신 이야기를 들을 땐 같은 부모로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하룻밤 사이에 젊은 시절 힘들게 사느라 덮어왔던 묵은 감정들까지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사이가 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차를 찾으며 같은 배에 탔던 또 다른 부부도 만났다. 제주도에 사는 젊은 부부였는데 그들은 사륜구동차를 타고 중앙아시아를 간다고 했다. 수속이 늦어지는 바람에 이틀 간이나 만나면서 서로 친해져서 헤어지기 전 사진을 찍었는데 별이님이 막 웃으신다. 왜냐고 물으니
"나이가 많은 순으로 차가 크고 짐이 많은 모습이 너무 재밌잖아!"
"그러고 보니 정말 신기하네요!"
별이님은 이렇게 내가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을 잘 보셨다.
별이님은 작은 박물관에 걸린 사진들을 소중하게 하나하나 찍으시며 재미있게 감상하신다. 돌잔치에 관한 유래를 읽으시며 돌잔치가 조선시대부터 있었는지 모른다고 하셨다. 같은 것을 읽었는데 대수롭게 여기지 못해 나는 그런 사실이 적힌 줄도 몰랐다. 역시 살아온 날만큼 보이는 거구나!. 마침 따님의 출산을 도와 첫 손주를 보셨고 이번에 그 첫 돌이 막 지난 손녀와 세 모녀가 핀란드에서 두 달을 보내다 오신 참이었다.
그러고 나서 아리랑에 관련된 비디오를 보며 헤드폰을 끼고 열심히 들으신다. 그러면서 본인은 이민 1세대로서 사는 게 너무 바빠 아리랑을 들려줄 생각을 못했다며 너무 아쉽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손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해 주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이민자로서의 경험 없이는 알 수 없는 깊은 공감을 하고 계셨다. 그러기에 자신보다 힘든 과정에서도 우리말과 노래를 아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고려인들의 삶에 대해 존경 어린 눈빛을 보내셨다.
그 눈빛이 나를 감동시켰다. 그것은 바로 박물관의 가치를 말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별이님 같은 눈빛이 되시면 좋겠다. 고려인들은 우리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우리의 핏줄들이다. 고려인이 더 이상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려인이던 연변의 조선족이던 적어도 해외동포로서 온전한 대접을 제대로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경보기조차 달고 오지 않은 우리 부부를 보고 조 선생님은 걱정이 많으셨다. 당장 부품을 구입해서 경보기를 달아주시겠다고 했다. 남편이 구글 지도를 보고 조사를 했지만 업체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살피던 중 자동차가 그려진 간판을 보고 별이님이 들어가 보자고 하셨다. 모두 망설이는데 혼자 뚜벅뚜벅 들어가신다. 직원들도 영어를 잘 못하는 상태. 함께 뒤따라 들어가 손짓 발짓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을 했고 우리가 필요한 장소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하바롭스크에서도 정비공장 주변을 돌아다니다 커다란 사우나 장 간판을 보고 망설임 없이 들어가서 안내를 받으셨다. 덕분에 풀장에 개인 침실과 샤워장이 딸린 호화스러운 러시아의 사우나 문화를 볼 수 있었다. 하바롭스크 광장으로 둘 만 여행을 다녀오 던 날도 길을 잃어버린 데다 핸드폰 배터리도 거의 없어지고 어두워지기까지 해서 불안했지만 별이님은 침착하게 끝까지 자신감을 잃지 않으셨다.
무엇보다 별이님은 장터에서 용감하시다. 배추만 발견하시면 김치를 담으시고 손질이 어려워 보이는 생선도 척척 사신다.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음식을 맛보기를 좋아하시는데도 언제나 조 선생님에 맞춰 주시는 모습이 조금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던가, 나도 어느새 생선조림을 만들고 난생처음 김치도 담그게 되었다. 처음에 아주 작은 한 포기로 시작한 김치는 다음 해 초여름 영국에서는 김장을 담기에 이르렀다. 김치를 먹을 때마다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별이님 마음이 이해되었다.
스위스의 온천 장에서도 별이님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수영복도 없이 입장하는 용기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늦가을 수확이 끝난 포도밭에 남아있는 달콤한 포도를 먹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피아노를 전공하셔서 고왔을 손은 마디가 굵어지셨고, 늘 두르고 계신 앞치마 주머니엔 언제나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시고, 푸세식 화장실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시는 용감한 별이님 , 나도 많이 배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