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길 어느 날 아침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음악을 듣다가 눈물이 쏟아졌다. 김윤아의 '키리에'였다.
쉴 새 없이 가슴을 내리치는 이 고통은
어째서 나를 죽일 수 없나
가슴 안에 가득 찬 너의 기억이, 흔적이
나를 태우네
나를 불태우네
울어도 울어도 네가 돌아올 수 없다면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야
꿈이야
불러도 불러도 너는 돌아올 수가 없네
나는 지옥에
나는 지옥에 있나 봐
쉴 새 없이 가슴을 내리치는 이 고통은
어째서 나를 죽일 수 없나
가사를 적으며 또 눈물이 흐른다.
이 노래를 들으며 침몰하는 배를 지켜보야 했던 어느 끔찍한 날이 떠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교통사고에 왜 그리 호들갑이냐고 했었다.
그렇다.
내가 살아온 세월이 반세기가 넘는데 그 보다 끔찍한 사고를 못 보았을 리 없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희생된 사건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세월호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가슴이 더 아픈 걸까?
대부분 아이들이 타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 때문일까?
한밤중이 아닌 아침. 파도는 0.5미터로 비교적 잔잔했고 구조시간도 충분했다. 텔레비전을 통해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지만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으니 당연히 모두 구해질 거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지켜보지 않았다. 영화에서 무서운 장면에 눈을 가리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러나 그 날 저녁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고...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제발 그렇게 되기만을 기도했다.
처음 한 언론사에서 시작한 뉴스가 도화선이 되었고 기득권 세력과 줄다리기를 하는 듯했으나 검찰과 다른 언론들이 정의의 편에서 대통령과 측근의 비리를 파헤치며 세월호의 억울함마저 풀어줄 듯한 기세였다.
결국 광화문에 촛불이 밝혀지기 시작했고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그것으로 모든 것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우리가 원하는 대통령이 정권을 잡았으며 세월호가 인양되었는데도 광화문 광장의 세월호 가족들은 여전히 천막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차차 밝혀지리라고 믿었다.
가방에 붙인 노란 리본을 뗄 수 있는 날이 곧 올 거라고 믿었다.
남편과 1년 동안 조금 긴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 대한민국은 조국을 둘러싸고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지난 촛불의 도화선을 만든 방송국마저 한 편이 된 모든 지상파와 보수언론은 물론이고 진보의 상징인 한겨레나 경향신문을 포함한 모든 신문들이 일제히 조국과 그 가족을 공격하고 있었다. 나의 가장 가까운 지인이나 친척 중에도 정경심은 최순실에 딸 조민은 정유라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뭔가 이상하다.
몇 년 전 한 북콘서트에서 조국과 문재인이 평범한 교수와 정치인으로 만난 자리에서 지금의 사태를 예견했다. 특히 법무부 장관을 향한 반 개혁 집단의 총공격을 예견했던 그가 진짜 비리를 가지고 그 자리에 갔을 리 만무이다.
그래도 선입견이 실체를 가릴까 나 자신을 자기 검열하며 열심히 진위를 알아보려고 노력했다. 매일 공부하듯이 뉴스를 꼼꼼히 분석했다. 그러다 우리나라 검찰의 역사에 대해서도 공부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것은 명백한 마녀사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사실로 믿으며 조국과 조국 가족에게 돌을 던질까?
의혹과 사실 더 나아가 진실을 왜 구분하지 않은가?
이 마녀 사냥 같은 광기가 보이지 않는가?
무엇이 그 광기에 눈을 감게 하는가?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고 검찰개혁이 중요한 과제임을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조국에게 한 두 가지 잘못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의 도덕적 잣대에 불만이나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내 절친한 친구 하나는 그 많은 잘못을 어찌 그리 뻔뻔하게 하나도 모른다고 할 수 있냐고 말하기도 했다.
처음엔 많이 속상했다.
그러나 KBS의 법조팀 가자들이 유시민의 알릴레오에 내놓은 다섯 문장의 반박문을 보면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기자들 중에서도 엘리트인 그들조차 프레임에 빠지면 속수무책이다.
그들은 박근혜 정권에서도 사회 정의의 편에서 싸우던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진보 진영이라 할 지라도 잘못을 했다면 분연히 일어나서 처벌받게 하겠다는 정의의 편에 여전히 서있으려 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들은 커다란 오류를 저질렀다.
그들이 처음 방송에서 제시했던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하려면 정경심 교수가 코링크 피이의 실 소유주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내용을 말하려는 제보자의 의도와 인터뷰 내용은 의도적으로 삭제하였다.
아니 그 사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운용에 관여한 것 만으로 자본시장법에 위반되는지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아 보지도 않고 검찰이 가지고 있던 전제를 그대로 사실처럼 보도하였다.
서초동 촛불집회에서 세월호 가족들을 다시 만났다.
생각해 보지 않은 장면이었다.
그게 미안했다.
그들이 아직 울부짖고 있는데 난 왜 지나간 역사의 한 사건처럼 여기고 있었을까?
그런데 나의 무관심은 정말 내가 만든 걸까?
정말로 이상하지 않은가?
촛불 정권이 출발했으니 세월호만큼은 해결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누가 왜 세월호를 어둠 속에 다시 묻으려 했던 걸까?
정말로 무언가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은 프레임으로 사회를 보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힘을 가진 권력자나 집단은 그 프레임으로 사회를 지배한다.
그렇다면 지금 그 힘을 가진 권력자는 누구인가?
죄를 만들어 명성을 얻고 죄를 덮어 부를 얻는다.-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의 검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직도 세월호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세월호 가족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아니다. 바로 내 가족이다. 그러므로 검찰개혁은 내 문제다.
지금 난 또 하나의 세월호를 보고 있다. 내가 참담한 것은 대명천지에 검찰개혁이라는 배를 가라앉히려는 적폐들 때문만이 아니다. 정의의 편에서 권력에 맞선다며 진짜 무소불위의 권력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소위 검찰과 한 몸이 되어버린 언론, 공정의 가치를 성찰한답시고 검찰이 내세운 의혹을 검증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고 조국 가족에게 돌을 던지는 자칭 진보주의자들, 그들이 나를 더 참담하게 만든다.
그래도 끝까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권력자의 프레임을 벗겨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가 지켜주지 못한 세월호의 아이들, 내가 지켜줘야 하는 내 아이들을 위해서다.
나는 언제 가방에서 노란 리본을 뗄 수 있을까?
김윤아의 키리에가 아직도 나를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