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꽃 담 철쭉엔
뿌리가 있을까? 없을까?

남편이 기억을 바로 잡길 바라며


아침 일찍 마당에 나가 옮겨심은 풀이며 꺾꽂이 한 나무들이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작은 풀꽃이 내 눈 길을 사로잡는다. 새끼손가락 반 정도 되는 키에 좁쌀보다 100배 정도 작은 꽃몽오리들을 터뜨리고 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바람과 햇빛이 강한 곳인데 당당하고 의젓해 보인다.


그러다 꺾꽂이 한 철쭉이 궁금해졌다. 바로 다음 날은 두 송이 중 한 송이 꽃이 시들해지긴 했지만 싱싱하게 살아나는 느낌이라 남편과 기뻐했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 싱싱하던 다른 한 송이마저 시들해졌었다. 그런데 시들어가던 꽃 한 송이가 싱그러운 모습으로 활짝 웃고 있다. 남편한테 봤냐며 삽목에 성공한 것 같다고 하니 남편이 뿌리째 심은 것이라며 심드렁해한다. 대부분 나보다 과거의 일을 잘 기억하는 남편이지만 이번에는 남편이 틀렸다. 갑자기 마음이 힘들어진다. 일단 그 당시 자세한 상황을 이야기해서 남편의 기억이 바로 잡히길 바랬다. 그러나 남편은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내가 맞다고 우기기 위해 말을 한다며 핀잔하면서 집중해 주지 않는다. 아무래도 남편이 이상하다.


길 가운데 작은 손가락 크기만 한 철쭉들을 봐 두었다가 비가 많이 와서 땅이 부드러워진 날 캐러 갔었다. 그러나 철쭉의 뿌리는 생각보다 길고 단단하게 얽혀 있었다. 남편의 손은 과로로 부어서 힘을 많이 줄수가 없어포기하기로 했다. 대신 동글동글하고 하늘하늘한 귀여운이파리에 작은 분홍꽃을 피우는 풀꽃을 캤다. 남편도 근처에서 같은 꽃을 캐왔다. 우리의 마음이 참 비슷하구나 느끼는 순간이었다. 철쭉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고개를 내민 철쭉 가지가 눈에 띄었다. 내가 가지를 자르겠다고 멈추자 남편이 예쁜 생명체를 왜 죽이냐고 가볍게 핀잔하며 지나쳤다. 바로 이 장면을 남편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꽃을 꺾어본 적이 거의 없다. 화분이 아닌 꽃 선물도 싫어해서 남편이 여행길에 꺾어 준 꽃 선물이 처음이었을 정도다. 그런 내가 꽃가지를 자르겠다고 생각한 건데 무심하게 넘어간 것이다. 그 날 무심하게 넘어간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다시 기억을 상기시키고자 설명하는 나를 자꾸 무시한다. 약이 올라 흙을 파보자고까지 했지만 조금 파다가 멈췄다. 나 좋자고 가족과 헤어지게 해 놓고, 이번엔 억울함을 풀자고 뿌리를 내리고자 애쓰고 있는 가녀린 꽃가지를 파본다는 건 너무 미안한 일이다. 사실 억울함 때문 만은 아니었다. 남편이 현실을 직시하길 바랬던 것이다. 자기 기억만 옳다고 믿는 못난 노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날 남편과 철쭉을 포기하고 돌아오던 길에 눈에 띈 싱그러운 꽃가지가 내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뿌리째 이사하지 않아도 돼. 아무데서나 뿌리를 내릴 수 있어."

철쭉이 꺾꽂이가 되는 나무인 줄도 몰랐으면서 왠지 모를 확신에 가위로 조심스럽게 잘랐다. 그리고 집으로 와서 내가 꾸미고 있는 들 꽃 담벼락에 조금 흙을 파고 가지를 꽂고 흙으로 눌러 주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라 흙이 찰지게 잘 붙었다. 어제까지 시들하던 꽃 한 송이가 다시 싱싱해져 너무 기뻤는데 땅을 파 본다고 건드려서 인지 잠시 후 다시 시들어버렸다. 남편 때문이라며 철쭉 앞에 남편을 데리고 가서 사과하라고 했다. 남편이 철쭉에게 사과를 했지만 기억을 바로 잡지는 못한 것 같다.


며칠 후 꽃은 시들어져 버렸지만 다행히 이파리는 아주 싱싱하게 잘 살아있다.

남편은 데크며 비가림 지붕이며 창고도 만들고 잔디와 텃밭도 계속 심고 가꾼다.. 거기에 운영하고 있는 연구 협동조합일로 회의도 하고 출장도 가고 보고서도 쓴다. 그리고 틈이 나면 여행일기를 쓰고 나와 함께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고 책도 읽는다. 너무 많은 일을 한다. 여행을 하면서도 너무 많은 일을 했는데 귀촌을 해서도 너무 많은 일을 한다. 좀 더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더 가졌으면 좋겠다.

좀 더 싱싱한 노후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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