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설거지

지금껏 내 돈 주고 소갈비를 산 기억이 없다. 값도 비싸고 덕지덕지 기름기가 많은 설거지가 귀찮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님이 여러 가지 음식과 함께 소갈비도 보내주셨다. 해남에 집이 온 날과 남편의 생일이 거의 겹쳐서 축하해 주시고 싶은 마음이 크셨나 보다. 요리를 하고 기름기가 덕지덕지 낀 냄비를 야외 수돗가로 가지고 나왔다. 새집이라 깨끗하게 사용하고 싶었다. 그런데 냄비만 달랑 들고 나왔고 세제나 수세미도 없다. 즉흥적인 결정에 준비성 없는 태도는 나이를 먹어도 변할 줄을 모른다. 그렇다고 그것이 꼭 나쁜 결과만 가져오지는 않는다.


눈 앞에 동백나무 낙엽들이 반짝반짝 시선을 끈다. 너무 작지만 몇 잎 주워서 냄비를 닦아 본다. 어 괜찮은데!

동백나무 밑에 커다란 머위 잎이 또 내 눈에 띄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기다란 잎이 보드라운 풀잎도 하나 떼어냈다. 싱그러운 풀냄새를 풍기며 어느새 그릇이 뽀드득 반짝인다. 너무 기분 좋아 콧노래가 절로 난다.


이 날부터 야생초 설거지가 시작되었다. 요즘 사용하는 주인공은 쑥이다. 길거리에 쑥이 지천이고 먹기에는 센 놈들이지만 설거지엔 제격이다. 가지 쪽을 함께 사용하면 철수세미도 필요 없으니 쇠비린네도 굿바이!


그러고 보니 캠핑카 여행에서 차를 마시던 티백을 이용해서 설거지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 기억들이 한쪽에 있다가 필요한 순간 작동했는지도 모른다. 설거지 후 물 뚝뚝 흘리는 수세미 대신 야생초 가득한 통이 주방 한편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향기로운 풀냄새로 주방의 잡냄새를 말끔히 덮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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