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해서 쓰는 글 1
필요한 것을 사려면 먼저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했다.
해남에 우리 집이 앉혀진지 보름이 어제로 보름이 되었다. 집이 오기 전부터 여러 가지 준비로 마음이 바빠서 거의 두 달 가까이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그것도 습관이 되려고 한다. 눈 앞에 자꾸 먼저 할 일들이 보이고 틈이 나면 필요한 물건들을 주문하느라 바쁘다. 데크를 만드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공구들, 식탁, 냉장고, 세탁기 등등. 그 와중에 장롱 대신 수납장으로 활용하려고 주문했던 침대를 취소하기도 하고 ( 수납장으로 활용하려던 침대는 정말 오랫동안 정성껏 골랐으나 막상 집을 받아보니 너무 작은 공간이 답답하게 꽉 차게 될 것 같아 고심 끝에 수납을 포기하기로 하고 취소했다.) 그러다 7미터 길이의 집이 너무 썰렁해서 인터넷을 뒤져 생각지도 않았던 장롱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늘막이나 비가림으로 사용할 샤워 커튼. 그것을 각관에 고정할 자석 들. 그 밖에도 마트나 장이 가깝지 않으니 감자, 양파, 토마토, 유기농 식빵, 현미 시리얼 등 먹거리도 주문 헸다.(감자는 2주일 동안 10킬로 한 상자를 거의 다 먹었고 양파도 옆집 친구가 많이 주었는데도 5킬로 한 상자를 사서 거의 다 먹어가고 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하루에 두 끼 식사로 충분했는데 요즘은 남편의 노동강도가 아주 세서 하루 세끼에 새참까지 챙겨야 할 지경이다.) 한 번 잘 정해 놓고 계속 거래하면 시간이 절약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물건을 고르는데 매우 집중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브런치에 글을 한 편 올린 경우에만 쇼핑 한 가지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갖기로 스스로 정했다. 내가 주문한 물건을 한 번씩 받는 것도 큰 즐거움 이므로 어느 정도 대가를 지불해야 마땅할 것 같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물건을 사야 하고, 그러기 위해 글을 쓰는 일을 시작하려 한다.
생존을 위해 쓰는 글. 첫 번째 이야기
2020년 5월 13일 수요일. 면사무소 나들이
정화조 허가 절차를 밟기 위해 해남 면사무소에 다녀왔다. 건축 사무소에 일괄적으로 부탁할 요량이었으나 기초공사를 맡아 주신 친구의 지인분이 직접 설치해 주는 바람에 직접 하게 되었다. 담당 직원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었는지 우왕좌왕하는 모양이다. 면사무소 직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한참이나 구경하고, 집에 배달하러 온 우체국 직원이나 내일 배송될 세탁기 회사의 상담직원과 통화도 하고(세탁기는 가장 오랫동안 기다렸던 물건으로 어제만 해도 언제가 될지는 알려주지도 않은 채 16일 이후로 가능하다는 무심한 메시지가 왔었다. 너무 막연하다며 조금만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고 했지만 별로 시원스러운 답변은 없었다. 그래도 설명 감사하다며 2주간 세탁기 없이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답장을 보냈는데 14일인 내일 보내준다는 연락을 받으니 너무 기뻤다.) 근처에 해남군에서 발행한 쓰레기 분리 배출에 관한 팸플릿이 있어서 몇 번이나 꼼꼼하게 되풀이 해 읽고 있는데도 남편의 업무는 끝날 줄을 모른다. 남편이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커피 한 잔을 가져다주고 나도 마셨다. 그러다 지루함을 달랠 겸 팸플릿에 적힌 내용 중 읍사무소 직원에게 알아봤던 내용과 다른 것이 있어서 한가해 보이는 직원에게 질문도 하고(시골에 내려온 이후 쓰레기 분리수거에 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사람들마다 조금씩 아는 바가 다르다. 예를 들어 스티로폼은 몇 년 전부터 분리수거를 안 하기로 한 모양인데 아직 면직원들 조차 모르는 것 같다.) 카톡 내용도 확인하며 다시 시간을 보냈다.
한참만에 남편은 준비해 간 두 장의 서류 이외에 매우 여러 장의 서류를 가져왔다. 그리고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서류에 거의 같은 내용을 적어 놓느라 힘겨워 보인다. 인터넷에서 출력해 온 두 장의 서류를 내는 것으로 가볍게 끝날 줄 알았다가 몇 시간 만에 겨우 면사무소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요즘은 많은 행정업무가 간소화되어 동사무소나 구청에 가면 대부분의 일이 매우 빠르게 끝나는데 이렇게 신고절차가 복잡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남편은 집에 가서 결과를 기다려 봐야 한다며 아직 완벽히 끝난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직접 신고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보니 직원도 제대로 된 절차를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어제 건축사무소 직원이 절차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 주지 않은 점에 대해서 남편이 불만을 표시했을 때 그 직원의 태도가 이해할 수 없도록 무례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건축사무소는 정화조 업체로부터 소개 명목으로 미리 돈을 받고 일을 추진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우리가 정화조를 직접 시공한 결과가 되었으니 그쪽 입장에서 일이 꼬였던 것이다. 남편이 정화조 업체의 도장이 찍힌 한 장의 서류를 보여주며 말한다.
"건축 사무소에서는 이 도장 하나에 업체로부터 10만 원을 받는 거야."
그리고 면사무소 직원도 일의 절차를 제대로 모르고 책상 위에서만 일을 하는 것 같아.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도 맞장구를 쳤다.
오다가 들린 농협 마트는 읍에 있는 것보다 훨씬 작았는데 입구 쪽 커다란 고무 대야 세 개에 낙지나 갑오징어들이 색다른 풍경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가격표를 보니 만만찮다. 갑오징어가 들어있는 곳에는 26000원의 가격표가 붙어있다. 남편은 한 마리, 나는 1킬로의 가격 일거라고 생각했으나 어느 쪽이든 우리와는 너무 멀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니 진하고 맛있는 천 원짜리 해남 두부는 없고 싱거운 유명 메이커의 두부뿐이다. 게다가 해남 와서 처음 먹어보고 홀딱 반한 유정란이 없다.
더 적은 사람이 사는 곳일수록 물류비용이 늘어나고 선택할 수 있는 상품이 적어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해남이라는 작은 지역 안에서 그 지역의 상품을 이용하기 힘들다는 것이 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해남에 살면서 대부분의 소비를 인터넷을 통해 하고 있다. 감자는 경북 청도에서 토마토는 광주에서 우리밀 식빵은 충남 보령에서 왔다. 골목상권을 살리겠다며 대형마트보다 재래시장이나 동네 가게를 이용하던 서울살이와 비교가 된다.
그래도 이 봄 지천으로 널린 쑥이며 머위를 실컷 먹었고, 이웃에서 나눠 준 쪽파며 마늘종, 텃밭에서 나기 시작한 상치, 쑥갓, 얼갈이, 열무가 넉넉한 밥상을 만들어 준다. 솜씨 없는 우리 부부가 텃밭에 심어 놓은 야채들은 겨우겨우 살아서 열매를 기대하기 힘들 것 같지만 친구의 밭에 함께 심은 감자도 알이 굵어지고 있을 테고 들녘마다 양파며 마늘이 풍성하니 점점 더 풍성해지는 해남살이를 꿈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