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만든 날
2020년 4월 10일
해남 나무시장에 예약해 놓은 나무를 찾으러 갔다. 비닐봉지 하나에 담겨 있는 묘목은 한 손으로 달랑 들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가볍다. 어제 광민 씨가 바로 들고 가자고 했을 때 일곱 그루나 되는 걸 어떻게 차도 없이 가지고 가냐고 우긴 것이 조금 무안할 정도였다. 그런데 묘목 중에 키가 큰 왕자두나무 외에는 이름표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나무 이름을 모를까 봐 걱정했더니 나이 지긋한 남자 직원분이 구수한 사투리로 나무에 직접 적어놓았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하지만 오늘 심으려고 보니 살구나무에만 빨간 사인펜으로 이름이 적혀 있다. 그나마 작은 꽃이 달려 있는 두 나무는 복숭아 나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무시장에서 보았을 때 꽃이 피었던 유일한 나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며칠 후 꽃이 떨어져 버린 뒤에는 어느 나무였었는지 기억이 오락가락한다. 왕자두나무 외에는 작은 나뭇가지 하나씩 크기의 묘목들이 모두 비슷해 보인다. 갑자기 유행가 가사가 생각나서 흥얼거려 본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처음 본 남자품에 얼싸 안겨.
빨간 등불 아래 빨간 등불 아래.
춤추는 댄서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불어라 색소폰아.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 생각해보니 이 나무들의 이름을 모르는 것도 별로 나쁘지 않다. 이름도 성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이 나무들을 설레는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조금씩 나무가 자라면서 일곱 개의 똑같아 보이는 작은 묘목들을 구분할 줄 알게 되겠지. 그리고 차차 더 시간이 지날수록 나무들의 이름을 알아갈 것이다.
정말 시간이 지나면 이 나무가 잘 자랄까?
시간이 지나면 나무가 자란다는 사실이 지금 당장은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이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형제들 중 유난히 약했던 나는 늘 아이들의 건강이 염려되었다. 잘 키울 수 있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이들이 한 번씩 아프면 두려워서 잠도 자지 않고 아이들을 돌봤다. 앞집 아주머니는 밤새 우리 아이가 보챈 날이면 출근하시는 바쁜 분이었는데도 아침에 내가 먹을 수 있는 요깃거리를 가져다주셨다. 힘들던 내 마음을 한 번에 밝혀주던 그분의 환한 미소와 경쾌한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도움이 없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보면 가족과 이웃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으며 아이를 키웠다.
이제 그 아이들이 내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던 당시만큼 자란 뒤에 이 나무들을 만났음에도 생명에 대한 두려운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두려웠던 기억 저편에 나의 고마운 이웃들이 그리워진다. 이 나무들이 자라서 맛있는 열매를 맺을 때쯤 그 이웃들과 함께 나눠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기적을 기대하면서 매일매일 이 나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