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일곱 평 호화저택

이동식 주택을 구입할 때 처음부터 알았어야 할 이야기

언덕 위 그림 같은 집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온 풍경 속에 내가 들어 있다.

꿈속에 그리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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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이 끝날 무렵 여행에서 돌아온 뒤 시작된 해남 살이 준비는 겨울까지는 눈에 보이는 것이 거의 없었다. 세 채의 집이 차례로 폐가가 된 드넓은 집터는 대나무 숲으로 무성해져 매우 심란한 상태. 대지라기보다 임야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부터 남편이 대나무를 베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베어내도 집터로 이용할 수 있는 땅의 모양을 상상할 수 없었다.


남편이 작은 톱 하나를 들고 열심히 대나무를 자르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물가에 집을 짓던 새들이 생각났다. 프랑스나 독일에서 작은 물새가 물 위에 집을 짓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집을 지어놓고도 물살에 떠내려갈세라 멀리 가지 못하고 둥지에 있는 새끼들을 지키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IMG_4052.JPG 모네의 정원 연못

저렇게 물풀이 우거진 작은 연못이 아닌

IMG_8458.JPG 영국의 어느 호숫가. 독일이나 프랑스 사진은 찾지 못했다.

커다란 호수 한가운데 작은 부리 하나로 집을 짓는 새도 있는데 우리도 집을 지을 수 있겠지...


가을이 되어 설레는 마음으로 건축 설계사 사무실을 찾았다. 바쁜 일이 있는지 오래 기다림 끝에 만날 수 있었던 설계사는 우리의 예산을 듣자마자 바로 값 싼 이동식 주택을 소개해 주었다. 그동안 우리가 알아보던 것보다도 훨씬 저렴한 것이었다. 그 정도 예산으로 집짓기 상담을 하러 왔느냐는 듯한 느낌이었다. 설렜던 만큼 실망스러웠고 한편으로 무안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우리는 겨우 인허가 비용만 챙길 수 있는 고객이었고 설계 상담은 우리와 거리가 먼 얘기였다.


결국 이동식 주택을 본격적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그동안 캠핑카 생활을 하면서 익숙해진 덕분에 이동식 주택에 쉽게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열과 내구성에 역점을 두고 잘 고른다면 좋은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우리가 찾던 집을 만났다. 다른 곳 보다 평당 가격이 조금 더 비쌌지만 충분한 가치가 있어 보였다.


처음 집이 앉혀지던 날 집을 배달하러 오셨던 기술자 분 중 한 분이 연신 사진을 찍으셨다. 공장에서도 이 집을 계속 보았는데 이 곳에서 보는 집이 너무 예쁘고 마음에 드신다고 했다. 본인도 이런 집을 가지고 싶다고.

아주 맑고 햇살이 좋은 날 우리 집은 작은 마을과 잘 어울리는 예쁜 풍경이 되었다.


집안에서 창을 통해 문을 통해 들어오는 장면들이 모두 그림이 되는 바람에 밤이 되어 바닥에 누우니 커다란 하늘이 별을 담아 방 안에 가득 들어온다. 특히 키가 큰 가죽나무 앙상한 가지 사이로 별빛이 반짝이는 장면은 동화 속 그림 같다.( 대나무들 등살에 햇볕에 더 다가가려고 웃자란 가죽나무는 너무 길고 앙상했다. 쓰러지더라도 나무의 방향이 집을 덮칠 염려가 없다는 말에 도 내심 걱정이 되었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했던 가구를 들여놓으면 너무 답답해질 것 같았다.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결정한 수납 침대를 과감히 포기했다. 빌트인 세탁기나 온수기 설치 덕분에 사이즈가 넉넉한 싱크대를 활용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살아보니 생각보다 일곱 평이 꽤 넓다. 식탁에 파티션용 책장 그리고 장롱에 이어 작은 책상 하나도 추가했다.(작은 집이어도 독립된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다.) 거기에 얼마 전에 남편 선배가 보내 준 커다란 뱅갈 고무나무 화분까지...(사실 이 화분이 오던 날 너무 황당해서 노지에서 키울 수 있는 나무로 교환해 달랄 까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집에 너무 잘 어울리는 녀석으로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반신욕조가 있는 건식 화장실이다. 사업주가 실리콘을 타고 물이 조금씩 떨어지니 샤워할 때 욕조 앞 마룻바닥에 수건을 대놓고 하라고 했는데 손바닥만 한 물막이를 설치한 결과 마음껏 사용해도 욕조 바깥으로 물이 튀지 않는다. 특히 화장실 한쪽 벽에 거울과 수납공간을 넉넉히 만들어 주었는데 이것은 비싸서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었다. 사업주는 이 밖에도 반신욕 의자에, 욕실 커튼까지 생각지 않았던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 디자인도 너무 맘에 들었고 세심한 배려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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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 수전이 고급이지만 샤워로 호환이 되지 않아 설거지할 때 물이 많이 튀고, 옛날식으로 작은 싱크볼이 두 개인 점, 6평짜리에서 한 평 늘린 덕분에 음영이 생겨 부분 조명이 다시 필요해진 점등 소소한 문제점은 개선하며 살만했다.


캠핑카 살림살이 노하우로 우리 집 물건들은 모두 제자리가 있다. 진동을 신경 쓰지 않고 물건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내가 쉽게 찾을 수 있고, 사용하기 편한 곳에 하나씩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한 달이 넘도록 배달이 안되던 세탁기가 드디어 배달되던 날 우리 부부는 아주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다. 세탁기를 설치하러 온 기사님이 시험가동을 하기 전 진동이 많을 거라며 걱정을 했는데 그 정도가 집이 흔들거리는 정도였다. 가장 강한 탈수로 시험가동했기에 그 충격은 너무 컸다. 이 집을 먼저 사용하고 있는 사업주에게 물어보니 세탁실이 따로 있고 자신들은 식기세척기를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세탁실을 따로 만드는 게 좋을 거라고 조언해준다. 속상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 이후 얼마간 다시 세탁실을 지을 것인지 다른 보조 세탁기를 사용할 것인지 많은 고민을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세탁기 배달이 한 달 이상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마음껏 행복할 수 있었다.


만일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 집을 선택했을까? 모르긴 해도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고 만약 선택했다면 세탁실을 따로 마련했을 것이다.


지금은 점점 익숙해져서 탈수만 약으로 해놓으면 그런대로 견딜만하다.(이동식 주택에서는 비교적 많이 채택하지 않는 온수보일러를 사용하기 때문에 마룻바닥에 공간이 많아져서 진동이 더 심하게 된 것이다. 이 공간은 단열을 위해서는 더 좋다.)


결국 나는 흔들리는 집에서도 행복하게 지내기로 했다. 우리는 집을 짓기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았으며 이 집은 편리하고 좋은 점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을 구입하면서 썼던 글이 생각보다 조회수가 많았고, 이런 집을 사기로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후기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


IMG_6899.JPG 볕이 잘 들어서 짧은 기간에도 식물들이 식구를 많이 늘렸다.
IMG_6904.JPG 앙상했던 가죽나무는 이제 풍성한 잎으로 여름풍경을화를 그리고 있다.


IMG_6884.JPG 남편이 애쓴 덕분에 돌투성이 황량했던 경사면도 예쁜 들꽃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무쪼록 이 글이 이동식 주택을 구입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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