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니? 죽었니?

꼬마 뱅갈 나무 가지

<두 달 전 6월 10일 일기>

요즘 거의 한 달째 매일 아침저녁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살피는 것이 있다. 뱅갈 고무나무에서 꺽꽂이한 작은 생명들이다. 물꽂이로 모두 뿌리를 잘 내려서 페트병에 흙을 넣고 옮겨 심었는데 하얀 뿌리가 검은흙 사이로 엄청나게 자라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그중에 한 녀석, 덩치도 가장 큰 아이가 아직도 뿌리를 내리지 못해서 아직 물꽂이를 벗어나지 못했다.


며칠 서울에 다녀오느라 문을 닫아놓은 탓인지 가지 밑동이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고 물에 이끼까지 생겼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그 녀석을 제일 먼저 살피고 난 후 우리 부부는 짐도 풀지 않은 채 구급대원처럼 기민하게 움직였다. 가지 끝을 알코올로 조심스럽게 소독하고 그것이 독할 세라 얼른 흐르는 물로 닦아 주었다. 물꽂이 했던 통도 깨끗이 소독하고 물도 갈아 주었다.



<6월 15일 일기>

우리의 살뜰한 보살핌 덕분인지 며칠 동안 점점 좋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아무래도 녀석이 생명을 포기하기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어 갑자기 조바심이 났다. 남편 광민이 가지 끝을 잘라내자고 했다. 칼을 알코올로 소독하고 신중하게 잘라내자 새하얀 진이 나온다.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증거다. 얼른 물휴지로 지혈을 하며 아기처럼 입을 맞춰 주었다. 내가 어미 나무에서 잘라내지만 않았다면 씩씩하게 잘 자랐을 건강한 이 녀석은 생과 사의 길목에서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말 미안해 뱅갈 작은 가지야.

네가 꼭 살아나면 좋겠어.


뱅갈 가지를 자른 이유

어느 날 해남 집으로 커다란 뱅갈 고무나무 화분이 배달되었다. 남편의 선배가 우리에게 새 집 입주를 축하해 주려고 보낸 것이었다. 커다란 나무를 보고 우린 당황스러웠다. 베란다도 없는 일곱 평짜리 집에는 아주 꼭 필요한 것들로 이미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화분 배달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 나무는 노지에서 살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며칠을 두고 작은 화분이나, 노지에서 살 수 있는 나무로 교환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이 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다. 연두 빛 바탕에 진초록 물감으로 아무렇게나 칠해 놓은 듯 보이는 생기 가득한 나뭇잎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점점 우리 집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댁 식구들을 새 집에 초대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나무가 걱정이 되었다. 식구들이 많이 오면 나무가 구석으로 밀려나 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가지가 거추장스러웠다. 궁리 끝에 튀어나온 나뭇잎을 소심하게 자르기 시작했다. 몇 개 잘라 보았지만 커다란 가지를 자르지 않고는 구석으로 쏙 밀어 넣기가 힘들고,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불편하다.(특히 시아버님은 우리가 겨우 일곱 평 짜리 집에 사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시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뭇가지가 불편함을 끼치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과감하게 싹둑!


커다란 잎 한 개에 중간 크기 잎 두 개, 작은 가지 하나 중간 가지 하나 그리고 큰 가지 하나.

마지막 큰 가지를 자르자 뱅갈 고무나무는 순식간에 볼품없는 나무가 되어 버렸다.

내가 가장 크게 미안한 큰 가지에서는 하얀 피가 뚝뚝 흘렀다.


아 ~이럴 수가!!!ㅠㅠ

할 수만 있다면 그 순간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말 못 하는 나무에게 내가 너무 못할 짓을 한 것 같아 나무를 매만지며 용서를 빌었다.

밖에서 들어온 광민이 이 광경을 보고 황당하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매며 미안해하는 나의 태도에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는 매우 숙연하게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나뭇잎과 가지를 모두 물에 꽂았다.


나도 다시 살아나기로 했어

나뭇잎을 물꽂이 하면서도 진짜 뿌리가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런데 몇 주 지나 작은 뿌리 하나가 생겼다. 너무 신기하고 고귀한 생명의 힘이 느껴졌다. 며칠 후 뿌리가 점점 많아졌고 우리는 페트병에 물 대신 흙을 깊이 담아 다시 심었다. 흙으로 들어간 뿌리들은 물보다 생장이 더 활발해졌다. 이제 좀 더 큰 화분으로 옮겨 심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유독 내가 가장 미안해하는 가장 큰 가지에 좀체 변화가 없었다.


살았니? 죽었니? 나는 매일 뱅갈 가지에게 노크를 하듯 똑똑 두드리며 물어보았다.

나의 관심과 사랑이 생명을 붙잡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석 달이 다 되어가는 지난 7월의 끝무렵 드디어 그 녀석이 뿌리 하나를 내었다. 죽지도 살지도 않은 상태에서 거의 아무런 변화 없다가 물꽂이 한지 3개월 만에 한 개의 작은 뿌리가 나온 것이다. 너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뿌리가 많이 나오고 자랐다. 그래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는 왕성하지는 못하다. 가장 튼실해 보이는 굵은 가지라서 정말 아무 걱정이 없었는데... 그동안 이 생명체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걸까? (대기만성이라고 했으니 크게 자라기 위해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르지.)


며칠 후엔 흙에 옮겨 심으려고 한다. 살기로 결심한 녀석이 흙을 만나 더 활기차게 자라면 좋겠다.

다른 뱅갈 꼬맹이들과 함께 이젠 당당히 흙에 뿌리를 내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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