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나 캄포 광장의 주인공은?
피렌체에서 남쪽으로 50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시애나는 토스카나의 중심 도시 중의 하나다. 시애나는 이탈리아가 통일 국가를 이루기 전까지 17개의 도시국가 연합체였다. 이들은 잘 결속하여 토스카나의 중심 도시로 위세를 떨쳤지만 피렌체를 넘어서진 못했었다. 그러다 13세기 피렌체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그들은 승리를 축하하고 결속을 더욱 다지기 위해서 팔리오라는 경마 축제를 벌인다. 해마나 3만이 넘는 관객이 캄포 광장을 메우고 경기를 관람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후 피렌체에 패배하였으나 성모 마리아가 자신들의 편이어서 전쟁에 승리했다는 팔리오 축제는 지금까지 잘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전쟁에 패한 덕분에 성장을 멈춤 시애나는 과거 중세의 유적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명소가 되었다.
11월 22일 시애나의 캄포 광장
높은 언덕 꼭대기로 올라가던 아톰이 이젠 절벽 아래로 떨어지듯 급경사를 내려가서 우리를 내려놓는다. 아주 넓으면서도 아늑하고 안전해 보이는 주차장이다. 바로 앞엔 화려하고 높은 빌딩이 보이고. 우리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 언덕까지 까마득히 높은 계단이 보인다. 혹시나 해서 빌딩 가까이 가보니 지하가 개방되어 있다. 모르는 이탈리아어를 그동안의 경험으로 추론하며 찾아보니 엘리베이터가 나왔다. 그 엘리베이터는 바로 언덕 위 우리가 가려고 하는 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 안전해 보이는 무료 주차장에 편의 시설까지 이용할 수 있다니..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해 본다.
구시가지의 광장에 들어서자 새로운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까지는 대리석 건축물이 대부분이었다면 이 곳은 전체적으로 붉은 벽돌색이다. 광장 바닥까지 세트가 되어 특이하고 깔끔한 인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광장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계단을 올라가 내려다보니 넓은 스타디움 꼭대기에 서있는 기분이다. 부채꼴 모양을 만들며 광장을 가로질러 그어진 선들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 같다. 이제 다시 계단을 내려와 광장을 가로질러 걸어가 본다. 그런데 느낌뿐만 아니라 실제도 광장이 비탈져 있다. 신기하다. 다시 무대 중앙에 서 보니 오른편엔 커다란 가이아 분수 그리고 멀리 커다란 원을 그리며 앉아 있는 관객들이 보인다. 갑자기 내가 무대 위 주인공이 된 기분. 그러나 진짜 주인공은 바로 뒤엔 지금은 시청사로 사용되는 왕궁이다. 내가 아닌 왕궁이 주인공이 되자 멀리 작아 보이는 건물들까지 모두 관객이 된다. 신기해서 여러 방향으로 사진을 찍으며 바람님과 시선 놀이에 빠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곳이 원형극장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추론을 해 본다. 다시 광장을 가로질러 꼭대기 건물로 가본다. 이제 확실히 보인다. 나는 이 수많은 건물들과 함께 관객이고 저 아래 무대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시청 청사가 주인공이다.
피렌체의 보불리 정원에서 지배자는 신의 세세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저 아래 땅의 세계를 바라보는 직선의 시선 배치로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고 세뇌시켰다는데 이 곳은 정 반대로 왕궁이 아래에 있다. 그리고 직선이 아닌 사선으로 시선의 중심을 차지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이 된다. 신의 세계의 힘을 빌지 않고도 바로 세상 한가운데서 주인공이 될 만큼 더욱 자신 있어진 걸까?
시선의 주인공이 되는 방법은 정반대지만 주인공은 늘 한가운데를 차지한다.
그리고 늑대의 젖을 먹는 두 아이의 조각이 자주 눈에 띈다. 광민이 궁금하다며 찾아보니 두 아이는 쌍둥이로 시애나 건국신화의 주인공들이었다. 시애나 사람들은 로마와 시애나를 만든 조상이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쌍둥이처럼 우열을 가릴 수 없이 거의 똑같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던 거 같다.
오늘도 숨은 그림을 찾아낸 기분으로 뿌듯해진다. 아주 오래전 이 광장을 만들고 왕궁을 건설했던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알아낸 기분이다. 이 치밀한 계획 속에서 전설을 만들어낼 궁리를 하러 모인 사람들의 모습들도 보이고 경사의 각도도 놓치지 않고 세밀하게 계산하려고 애쓰는 건축가의 모습도 그려진다.
여행이 점점 더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