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마지막 선물
2018년 11월 28일 수요일 로마 마지막
아침부터 날씨가 화창하다. 어젯밤 오는 길에 사 온 곰팡이 제거제를 좁게 접은 휴지에 묻혀 결로가 생기는 곳에 정성껏 붙였다. 화장실과 차 위의 환기창도 오랜만에 조금씩 열어놓고 다녀오기로 하였다. 이제 산뜻한 마음으로 로마의 마지막 여행을 위해 출발한다.
어제는 바티칸에 줄을 서지 않고 입장했는데 오늘은 콜로세움이다. 그동안 오가며 사람들로 북적이는 모습을 보았기에 조금 긴장이 되었다. 그래서 만일 사람이 많다면 포로 로마노 언덕을 먼저 가자는 둥 작전도 세웠다. 그러나 어제 바티칸보다 더 빠르게 입장이 진행되었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로마의 랜드마크인 콜로세움에 들어선다. 과연 콜로세움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하다. 새파란 하늘이 콜로세움 구멍마다 싱그럽게 들어차서 더 화려해 보인다.
드넓은 콜로세움을 여기저기 다니며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본다. 그러자 너무 끔찍한 장면들이 머릿속에 펼쳐진다. 살육을 벌이기 위해 이토록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고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 해전을 치르기도 했다는 깊은 지하 공간엔 구경거리를 위해 바쳐졌을 수많은 원혼들이 아직 있을 것만 같다. 추워진 날씨 탓인지 차가운 돌덩이들 속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
거대하고 스산한 돌덩이들을 나와 포로 로마노 언덕으로 올라오니 햇살이 훨씬 따뜻하다. 무너진 돌 담 난간 위에 앉아있는 갈매기들이 먹이를 내노라고 대 놓고 요구하는 표정이다. 그 담너머로 보이는 콜로세움은 더 이상 위협적인 모습이 아닌 작은 페허일 뿐이다. 그래도 구멍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여전히 아름답다. 한쪽에 마차 경기를 했다는 공원도 보이고 더 멀리에는 우리가 다녀왔던 바티칸이며 박물관 대성당의 돔들이 보인다. 이제 다시 저 속으로 들어간다. 햇볕이 따뜻한 날씨지만 그늘이 되면 다시 춥다. 다시 근무를 시작하기 전에 첫날 들렀던 맥카페에 가고 싶다.
방향감각이나 거리 감각이 무딘 나는 가끔씩 광민을 힘들게 하곤 한다. 오늘 바로 그런 날이다. 내 기억에 우리가 첫날 갔던 맥카페가 콜로세움 근처였던 것 같아서 가자고 하니 황당한 얼굴을 한다. 내 생각이 틀렸더라도 모든 유적지가 다들 가까이 있어서 그렇게 멀 것 같지 않은데 저렇게까지 어이없어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속상한 마음을 누르고 어쨌든 찾아가자고 하니 아예 혼자 찾아보라고 한다. 못 찾을 것도 없지. 가까운 곳에 있는 맥카페를 검색해 본다. 그런데 웬일 일지 그 흔하던 맥카페가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오기가 생겨 이리저리 뒤지는 사이에도 로마의 볼거리들은 어디서나 우리와 마주쳤다. 계획에 없이 마주치는 장면들에 반가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고, 다시 맥카페를 찾아 나서길 반복하다 내 기억이 실제와 많이 다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찾아간 맥카페는 내가 찾던 곳이 아니었고, 커피와 함께 주는 초코머핀도 없으면서 오히려 더 비쌌다. 맥카페가 가게마다 시스템이 다르다니 놀랍고 실망스러웠다. 그 집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작고 볼품없어 보이는 초코머핀도 오히려 더 비싸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바쁘고 붐빈다. 우리가 로마 첫날 들렀던 맥카페는 마치 우리를 위해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시간 밖의 공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실망스럽게 맥카페를 나오면서 우리 발걸음은 특정한 방향도 없이 사람들의 인파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나를 위해 로마가 마련한 깜짝 선물 트레비 분수를 만났다. 애메랄드 물빛이 하얗게 빛나는 조각상들과 어우러져 내 마음속 주름살을 한 번에 다 펴준다. 지금까지 본 다른 분수들이 건물이나 광장을 장식하는 조연이었다면 트레비는 주연이었던 왕궁품으로 들어가 스스로 주연이 된다. 분수와 어울리도록 왕궁의 한가운데를 움푹 들어가게 다시 설계했다는 당시의 건축가들의 안목과 창의성이 존경스럽다. 어느 쪽으로 어떻게 찍어도 아름답지만 이 분수의 아름다움을 다 담아내진 못한다. 아름다운 저녁 빛이 점점 더 분수를 매력적으로 만든다. 벌써 일어서야 하는 시간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전철역 쪽으로 가는 길에 하늘이 시끄러워 올려다보니 새 떼가 장관이다. 새를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너무 위협적인 장면이다. 그래도 새카맣게 하늘을 덮으며 온갖 무늬를 다양하게 만들어내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지구의 종말이라도 오려나? 소리도 엄청나다. 도저히 대도시의 하늘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생각해보니 로마가 다른 도시에 비해 층고가 낮고 공원이 많아서 대도시의 느낌이 별로 들지 않고 좋았던 것 같다.
헤어지려는 마당이라 그런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쉽다. 출발할 역에 가까워지자 마침 콜로세움에 불이 들어온다. 미리 예약이라도 해 놓은 것 같다. 우리는 어느 결에 불빛에 빛나는 콜로세움 앞에 서 있다. 그런데 엊그제 내린 빗물이 콜로세움을 내 발 앞에 한 개 더 만들어 놨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풍경이다. 다시 한번 로마의 선물을 받아보는 시간. 두 개의 콜로세움이 선명하게 내 카메라에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