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다음날, 남편에게 바라는 건.

샌드위치가 먹고 싶어.

by 경주

덜덜 떨었다.

너무 추웠다.


렌즈도 안경도 없어서

보이는 것도 없었다.


침대를 밀어 어디론가 나를 데려간 덕에

내 곁에는 남편도 없었다.


누워 있는 내 곁에는

내 침대를 밀어주는 분뿐이었다.


너무 춥다고

떨며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그분의

손을 덥석 잡았다.


따뜻했다.


성별은 남자였던 것 같은데...

사과하고 싶다.


세상 미안하다.


무슨 죄로 이 아줌마에게 손이 잡혀

뿌리치지도 못하고

...;;;;;



그렇게 이끌려 간 곳에는

나의 담당 의사 선생님이 계셨다.


야심한 시각..


나 때문에 달려오셨을 선생님...



아이고 이게 뭐야..
내가 진작 수술하자고 했잖아...


죄송해요
말 들을 걸...


괜찮아요
내가 왔으니
마음 편히 수술받으면 돼요.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마운 JSH 선생님!




이후부터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경주야, 고생했어.

남편이다.


아기가 태어났다.

아니 아기가 태어났다고 했다.


아기 건강해?


2킬로 대이긴 해도

의사 선생님의

예상보다 몸무게도

더 나가고

건강하고 예쁜 아기라고 했다.


그렇지만

내 곁에는 아기도 없고

나는 마취로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나는 낳기 전보다

더욱 부풀어있었기에

출산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깨어난 곳은

다인실이었다.


옆 자리 산모는

자연분만을 하고 돌아왔는지

밥을 먹으며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토로하고 있었다.


옆자리의 그녀는 밥을 먹는다.

친정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챙겨주는

음식도 먹는다.


나도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

하지만

나는 마취가 덜 깨어 움직이지도 못하며

현재 금식.


엄마와 아빠가 왔다.

진작 연락하지.

왜 아이를 낳고 연락했느냐며 속상해했다.

밤 11시 45분 출산.

여전히 과로하면 안 되는 엄마가

무리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정신이 든 이후에야 엄마에게 연락했다

아빠는 언제나처럼

바르고 좋은 말을 해주었다.

나는 엄마와 아빠에게 어서 가서 쉬라고 했다

수술이라 아픈 것도 모르고 출산했다며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시부모님이 오셨다.

아이와 나를 보시고는

다시 내려가신다하셨다.


남편은 시부모님을 데려다 드린다며 나갔다.


시부모님을 맛집에 모시고 가 점심을 사드리고

터미널에서 버스를 태워 드리느라

그는 한참을 오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맞긴 한가보다.

보호자식을 내려두고 가신다.


커튼이 거두어졌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는

음식을 먹거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힘들었다고 울먹이거나

여하튼 누군가와 함께이다.


나만

홀로

마취가 깨지 않아 움직이지도 못하고

보호자식의 냄새를 맡으며

그들을 지켜본다.


겨우 지나가시는 간호사님께

커튼으로 나의 시야를 가려 달라고 한다.



내게는 너무 길었다.

내게는 너무도 한참이었다.


나의 병원은 터미널과 도보 5분 거리였고

병원 앞은 역세권이자 터미널 근처답게

음식점으로 넘쳐났다.


굳이 차를 타고

그 줄 서서 먹는다는 추어탕을 먹으러 갔어야 했던 걸까.

섭섭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감정이 밀려왔다.


지방에서 올라오셔서

잠시 아이만 보고 내려가시는

시부모님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건

그럴 수 있는 건데

그런 건데도

마음 어디가 고장 난 걸까.

가슴이 답답하다.



그따위 일로 마음 불편해하는

내가 미웠다.


내가 미워지자

그가 또 미워진다.


급기야

그가 옆에서 숨만 쉬어도 미웠다.


차마

자존심이

시부모님 맛집 데려간

그 몇 시간이 속상했다고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유일하게 투정 부릴 수 있는

남편이 너무 필요했다고

나는 너에게 어리광을 피우고 싶었다고

못 견디게 보고 싶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철든 사람이고 싶었다.

사실은 그 순간 누구보다 어렸지만...


그렇게 그에게 말하지 못한 감정은

그의 모든 행동에

이유 없는 투덜거림을 만들었다.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그는 받아놓은 휴가 기간에도

출근을 해야 했다.


그 없이 견뎌야 하는 시간이 길었다.


친정엄마에게

어리광 피우는 옆자리 산모를 보며

남몰래 서러웠다.


여전히 약을 먹는 엄마에게

걱정이 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출산

환희로 가득 찬 산모가 비치던데

나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마취가 풀리자

임신 때보다

몸은 더욱 힘들었다.


건강한 몸이어야

건강한 정신이 깃들 수 있다.


임신 전 230을 신던 내가

임신 당시 245를 신던 내가

출산 후에는 245 운동화도 신을 수 없었다.

슬리퍼만 신어야 할 만큼 부었다.


슬리퍼도 살이 닿는 부위는 아팠다.


발가락은 탱탱 부어올라

스치기만 해도 아팠다.


지독한 붓기...

어쩌면 마음을 토로하지 못해

아픈 마음이 부풀어버린건 아닐까.



두렵고 힘들었던 수술 당시

그때의 감정을

누구에게도 안겨 말하지 못했다.


나는

그와 단둘이 있는 시간에

그에게

내가 얼마나 두려웠는지를

이야기하고

그의 위로를 듣고 싶었다.


지금 역시

금식 없이 수술한 탓인지

붓기가 너무 지독하다고

힘들다고.


만약 수술 다음날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남편에게

곁에 있어달라고

최선을 다해 곁에 있어달라고

부탁할 것 같다.


그리고는

그날 먹지 못한 샌드위치가

너무 먹고 싶은데

금식을 해야 해서

속상하다고

금식이 끝나면

샌드위치를 사달라고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그러고 나서는

이제

진짜 엄마가 될 거라고

어서 몸을 움직여

아이를 보러 갈 거라고

씩씩하게 말하고 싶다.


사실 감사한 일들이 가득이었다.


나는 눈을 떴고

나의 아이는 건강했다.


부모님과 시부모님의

축복 속에 첫 아이를 출산했다.


나의 어떤 못난 모습을 보아도

예쁘다해 주는 남편.

그리고 병원에서 제일 예쁘다는

소개를 받은 나의 건강한 아기.


다시 돌아간다면

괜스레 퉁퉁 부은 표정으로

남편을 대하는 대신

안아달라고 무서웠다고 힘들었다고

징징대고서는

우리에게 온

아이의 아름다움을 함께 이야기하고는

더 크게 함박웃음 짓고 싶다.


다시 돌아갈 방법이 없으니

나의 딸과 남편을 향해

괜스레 웃어본다.


먹고 싶었던 샌드위치.. 결국 이러저러하여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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