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고수 닮은 내 남편
콩깍지 아님 주의
생일 선물로 뭐 사줄까?
양말!
지난번에도 양말 사줬잖아.
그래도 양말! 원래 양말은 다다익선이야.
그는
무엇을 사줄까 물을 때면
항상 양말이라고 답했다.
그때 알아챘어야 했다.
수많은 신호를 왜 난 몰랐을까.
콩깍지가 단단히 씌어
나와 맞지 않는 그의
억만 가지 성향이 담긴 단서들을 놓쳤다.
그 단서를 놓치게 된 이유는 하나다.
내 남자 친구를 본 나의 친구가 말했다.
네 남자 친구 고수를 닮았다!
남자 친구에게 말한다.
내 친구가 너 고수 닮았대.
기분 나빠.
내가 왜 고수를 닮아.
지금도 그렇지만
2000년대 당시
풋풋한 고수는
잘생김의 대명사였다.
'기분이 나쁘다고?'
본인이 지상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 남자.
내가 닮다니.
나를 닮았다는 것도
기분 나쁜 말인데.
왜 내가 고수를 닮아.
고수가 나를 닮은 거면 몰라도.
이어지는 그의 말.
자신감이 꽉 차올라
하늘로 떠오를 것 같던 내 남자.
고수를 닮았건 아니건
그는 정말 잘 생겼다!
어딜 가서든 주목받는 외모.
캐스팅 명함도 받아봤다는 그.
타고 난 넓은 어깨,
그리고 체육과를 나온 만큼
가꾼 몸매도 훌륭하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견디지 못한다던 말도
난 사실 멋지기만 했다.
신혼 때
화가 치밀어 오르던 날도
설거지하는 뒤태를 보면
어이없게도
화가 누그러지곤 했다.
그때 꾹 참고
더 많은 것을 조율해나갔어야 했는데.
사실
내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아무도
그럴 거라고 생각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그러니까
고백하자면
외모지상주의의 노예다.
결혼하고 옷장을 열어보니 양말이 한가득이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정말 한 가득이다.
이게 뭐야?
원래 양말은 1회용 아니야?
' 그럼 옷장은 쓰레기통이니?'
' 1회 용품 쓰고 버리는 곳?'
지금이야 그런 말을 하겠지만
그 시절의 나는 그저 남편을 보고 빙긋이 웃었다.
그 마저도 귀여웠던 것.
그 시절의 나.는. 그랬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결혼 전 우리의 신혼집에
남편이 혼자 먼저 살고 있었다.
신혼집을 마련하고
6개월이 지나서 결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의 짐을 가져오기 전까지는
옷장 한번 열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 나, 뭐한 거니?'
그래, 난 당연히 많은 칸이 비워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반드시 필요한 물건만 사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도 심사숙고하는 나는
남도 당연히 그럴 거라는 어리숙함이 있었다.
그런데 내 옷을 넣으려 열어본 옷장.
안방 가득 짜 놓은 옷장
그곳이 꽉 차 있다.
그중 한 칸은 양말과 런닝.
이미 사용한 '1회 용품'들이 가득 들어있다.
그 옆 칸은 와이셔츠, 런닝, 양말 모두 새것이다.
옆 칸의 옆 칸으로 가 볼까.
이건 뭐야!
정장, 코트, 넥타이
상표도 떼지 않은 수많은 것들.
매장처럼
혹은 연예인의 옷장 마냥
가득 걸려있고 꽉 차 있다.
신발장을 연다.
내 신발은 들어갈 자리가 없다.
신발장이 이미 가득 차 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새 신발이 가득이다.
빨래, 청소, 정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 남자.
쇼핑에 몰두하는 이 남자.
나는 고수 닮은 남자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