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시원하던 초가을 밤, 그가 집 앞에서 나를 불렀다. 자전거를 못 타는 내게 자전거를 타며 느끼는 바람이 얼마나 상쾌한지 알려주고 싶다고 한다.
자전거 뒷자리에는 촌스러운 프린팅의 수건이 하나 놓여 있다. 타다 보면 엉덩이가 아플 거라며 수건 위에 앉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방에서 자전거로 등하교를 했다는 그는 어른이 된 지금도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한다. 그가 태워주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데 내가 살던 곳도 내게 이런 즐거움을 줄 수 있나 싶다. 자전거에서 기분 좋게 내렸는데 그가 뜬금없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이는 많이 낳자.
갑자기? 이렇게 진지한 이야기를 이렇게 해?
나는 많이 낳고 싶은데 그냥 넷만 낳자.
더 낳고 싶지만
아이를 본인이 낳나?
나 간도 안 좋고
코피 달고 살고
임신도 어려울 거 같은데?
아이가 안 생기면 입양하자.
그랬지. 참. 그의 꿈은 좋은 아빠였다. 스무 살 MT에서 만난 남편은 그때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좋은 아빠 역할을 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할 것이고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좋은 남편이 될 거라고.
임신이 어려울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너무 빨리 아기가 찾아왔다. 몸이 약한 탓에 임신 기간 내내 너무 힘들었다.
경주야,
우리 둘만 더 낳자.
나는 사실 더 많이 낳고 싶거든. 그래도 아들 둘에 딸 둘이면 될 거 같아.
그런 농담하지 마. 나 지금도 힘들어.
그럼, 딱 하나만 더 낳자.
내 차 가득 우리 가족을 태울 수 있다면
나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어.
그런데 둘은 부족해.
차에 빈 공간이 남아 네 명이라는 인원은 부족하단다. 물건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맥시멀리스트의 면모를 보이는 그.
11월 결혼 후 맞는 첫 8월에 딸이 태어났고 두 번째 해 8월에 아들이 태어났다. 나는 12개월 차이가 나는 연년생 남매의 엄마다.
나의 임신은 순탄치 않았다. 임신 중에도 간수치를 조절하는 약을 먹어야 한다는 점은 내내 나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걱정스러웠다. 걷다 보면 다리가 보라색이 되어버리고 어지럼증에 길을 걷다 바닥에 주저앉기도 했다. 임신 중독증으로 온몸이 부어올랐다. 225mm 구두를 신던 내가 245mm의 운동화가 아니면 신을 수가 없었다. 48kg에서 결혼을 위해 감량한 3kg 덕에 45kg였던 나는 온몸이 부어올라 순식간에 65kg이 되었다. 게다가 머리털이 빠지기 시작하니 거울을 보면 너무나 우울했다. 예정일을 채우기에는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뱃속에서 아이가 더 이상 자라지 않으므로 의사 선생님은 조금 더 빨리 아이를 꺼내자고 하셨다. 죄책감, 우울감,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나의 임신.
나의 남편은 여전히 빛났다. 이제 겨우 서른세 살의 그 남자는 결혼 전과 후의 변화는 없었다. 아니 안정감으로 인해 더 편안하고 멋진 사람이 되었다. 그런 그를 보는 나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평생 지방을 가져본 적 없다는 그는 부어오른 나의 몸을 보며 어느 날은신기하다 어느 날은귀엽다 어느 날은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머리털이 빠지고 몸은 부어오르고 있었다. 그 말이 진심 일리 없다며 그를 의심했다. 임신성 당뇨에 간수치가 나쁘다는데 나의 건강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는 그. 혼자만 행복하기로 작정한 사람 같아 그가 멀게만 느껴졌다. 나의 걱정, 외로움, 죄책감을 그와는 나눌 수 없다고 생각했다. 틈만 나면 내게 다가오는 그. 내가 가진 최선을 다해 그를 밀어냈다. 그 시절 나는 여러 이유로 불행했다. 나의 이 불행을 그에게 전염시키고 싶었다. 태어나서 뱉어본 적 없는 날 선 말들이 그를 향해 터져 나왔고 멈출 수가 없었다. 그를 바라만 보아도 행복해하던 내가 사라지자 그도 달라졌다.
그는 다시 쇼핑을 시작했다.
그의 마음이 떠나간 후 그 시간을 돌이켜보니 그날의 그는 진심으로 내가 사랑스러웠던 거였음을 그제야 짐작할 수 있었다. 해결해 줄 수 없는 그 문제를 내려두고 그저 나와의 사랑을 속삭이는 그것이 그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었다. 돌아선 그를 보니 그는 마음에 없는 말은 절대 내뱉지 않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