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겨우 서른아홉 살의 이중섭은 연고자 하나 없이 쓸쓸하게 죽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였다. 그렇지만 죽기 전 열린 전시회 반응이 좋지 않아 죽을 때까지 지독하게도 가난했다. 가난은 그가 사랑하는 가족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다. 가난은 자꾸만 빼앗는다. 충분히 사랑할 자유, 행복할 시간 그리고 그의 아이까지도.
그에게 남겨진 자식은 아들 둘이지만 실은 한 아이가 더 있었다. 가난하여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떠나보낸 아이는 디프테리아였다. 그를 찾아 부유했던 일본인 아버지를 두고 홀로 한국을 찾은 일본인 아내도 영양실조로 힘들었다. 더 이상 가난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을 수 없었기에 그는 두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를 일본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리웠다. 그리하여 가난해도 온 가족이 모여 살던 제주도에서의 생활을 추억했다. 그의 기억 속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이제 가족과 멀리 떨어져 사는 그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정성 어린 그림이 담긴 편지뿐이었다. 중섭은 최선을 다해 편지지를 꾸미고 마음을 다해 글을 썼다.
조금만 있으면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과
...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바람 하나만으로 참아왔다오.
예쁘고 진실되며 나의 진정한 주인인 남덕 씨
...
그대들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대작을 거침없이 만들어낼 자신이 가득하다오.
-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
사랑 가득한 글에 그림을 덧붙인 편지. 일필휘지로 보이는 그의 그림. 그러나 실은 그의 마음에 들 때까지 여러 번이고 다시 그렸던 그림이다. 그의 진심 어린 엽서만 보아도 눈물이 고였다. 더 멋진 그림을 그리려고 수없이 같은 그림을 그리며 가족에게 보낼 그림을 완성했다는 이중섭.
그는 그림뿐 아니라 그의 아내에게 이름도 선물했다.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여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아내는 남덕이라는 그 이름을 많이도 좋아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직접 꽃을 주고 싶었던 그 마음을 헤아려본다.
그의 아들 태현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가족 그림에서 유독 많이 보이는 저 끈. 꼭 붙잡고 함께 하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얼마나 그리웠을까. 가난해도 함께 모여 살던 제주도의 생활을 그리워했던 그. 그림 속에는 게, 물고기 등도 함께 등장한다.
그가 사랑한 여인 야마모토 마사코는 2022년 8월 13일 노환으로 세상을떠났다.(1921~2022) 이중섭도 간질환. 영양실조 따위가 아닌 늙어 맞이하는 평화로운 죽음으로 그녀와 함께 생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의 아름다운 젊음을 마주하니 처절한 사랑에 슬퍼진다.
그에게 사랑받은 나와 두 아들은 행복했노라
-야마모토 마사코 (이중섭에게 받은 이름. 이남덕)-
아이를 보내고 그를 보내고
젊음을 그리움으로 애태운 그녀는
사랑받을 수 있어 행복했노라 말한다
감히 그들의 사랑을,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그 숭고한 마음에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그러한 사랑을 했기에 가능했던 그녀의 평온한 죽음을 마음 깊이 추모한다.
만남보다 긴 이별의 시간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그들의 사랑이 빛난다.가난은 그들을 물리적으로 헤어지게 하였으나 사랑하는 마음에 다가서지 못했다. 사랑은 가난을 이긴다. 가난은 진정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 걸까.
이중섭, 그가 생각한 행복은 그저 가족이었다. 그가 사랑한 여인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사는 삶. 그리고 또 그려보아도 닿지 않던 가족.
그에게 그토록 어려웠던,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음에, 다 큰 어른이 그림보다 울면 안 된다고 손을 들어 눈물 닦아주는 아이들과 너와 헤어졌다면 나 역시 너를 그리워하는 매일이었을 것이라 말해주는 남편과 그림을 볼 수 있음이 너무도 감사하여 마음이 저려온다.
< 전시 안내 >
일제 강점기 강인한 소 그림을 그린 민족 화가로서의 이중섭을 보고 싶었다면 실망할지 모를 전시이다. 소 그림은 볼 수 없다. 이번 전시는 그의 사랑에 초점이 있다. 그가 사랑한 여인, 이남덕 그리고 아들 태현, 태성을 그리워했던 이중섭의 이야기. 인간으로서의 그의 삶을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개인적으로는 예술가의 삶을 따라가는 전시를 좋아하기에 엄청난 마음의 울림을 느껴던 전시이다.
장소 : 국립 현대 미술관( 안국역 1번 출구 759m, 경복궁역 4번 출구 902m ), 주차 가능(주말 대기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