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은 인삼 농사를 지었다(오빠랑 나도 자주 밭일에 투입되고는 했다). 당시는 밤중에 인삼밭에 몰래 들어가 인삼을 훔치는 도둑이 기승을 부릴 때였다. 우리 가족은 피해를 막기 위해 여름이면 밭에 있는 오두막에서 잠을 자며 밭을 지키고는 했다.
우리 밭은 강 건너에 있었다. 우리 네 식구는 그 밭을 ‘물 건너 밭’이라고 불렀다. 강 건너 그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 우리 밭과 산에 사는 생명들밖에 없는 무인도와 같은 곳이었다.
우리 가족은 날이 저물 즈음 라면과 밥 같은 저녁거리와 복숭아, 자두 같은 간식거리를 챙겨 보트를 타고 강을 건넜다. 밭 앞에는 강이 흘렀는데, 오두막에 들어가기 전 우리 가족은 강가에서 여름밤을 즐겼다. 아빠랑 오빠는 수영을 하고, 그물로 물고기를 잡았다. 엄마는 옆에서 올뱅이(표준어로 ‘다슬기’)를 잡거나, 집에서 싸 온 음식을 나눠 줬다. 나는 엄마가 주는 과일을 받아먹고, 아빠랑 오빠가 잡은 물고기를 구경했다. 그때 나는 처음 ‘쉬리’라는 물고기를 봤다. 쉬리는 깨끗한 물에서만 사는 물고기로, 그때는 잡으면 안 되는 물고기였다. 우리 가족은 쉬리를 구경하고 물에 놔주었다.
각자의 개인 활동이 끝난 뒤에는 함께 자갈밭에 누워서 밤하늘을 봤다.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까만 밤하늘 위에서 빛났고, 별똥별이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별똥별을 몇 번이나 봤다. 별똥별을 볼 때마다 기도했다. 우리 가족이 화목해지기를, 내 삶이 더 행복해지기를.
소원이 이뤄졌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때의 여름밤들이 내 어린 시절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부모님이 싸우지 않고 아빠가 술을 먹지 않은 그 시간이, 우리 가족밖에 없는 예쁜 곳에서 보낸 그 시간이 나는 너무 좋았고, 서른 중반이 된 지금도 종종 떠올리며 웃음 짓는다.
마음이 힘들 때, 내가 너무 아무것도 아니고 하찮게 여겨질 때 나는 그때의 여름밤을 떠올리고는 한다. ‘아, 나도 이렇게 예쁘고 소중한 추억이 있는 사람이었지. 내가 살아온 삶이 늘 최악이었던 것만은 아니야.’ 하면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여름밤을 기억하며, 그날의 만족감과 행복을 되짚으며 잠시나마 위안을 얻는다. 그렇게 나의 부정적인 감정과 고통을 진정시킨다.
그때는 몰랐다. 그 여름밤들이 이렇게 소중한 기억이 될 줄은. 나의 작은 안식처로 남게 될 줄은. (24.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