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엄마가 구급차에 실려 갔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불을 피우고 콩을 가리다가 일산화 탄소 중독으로 쓰러졌단다. 같이 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 아빠가 쓰러진 엄마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단다.
엄마가 사는 곳에는 엄마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없어, 구급대는 근처 대도시인 대전에 있는 병원들에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엄마를 받아 주는 곳은 없었다. 결국 멀리 떨어진 청주의 어느 병원에까지 연락하게 되었고, 그곳에 자리가 있다고 하여 구급대는 엄마를 데리고 청주로 향했다.
엄마는 청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깨어났다. 그제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챘다. 엄마는 사정했다. 나 이제 괜찮다고. 제발 집으로 보내 달라고. 구급대원은 안 된다고, 위험하다고, 바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만류했지만, 엄마는 계속 집에 가겠다고, 제발 보내 달라고 고집을 부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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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집에 보내 달라고 했어?
입원실에 누워 있는 엄마에게 물었다. 겁이 났다고 했다. 남은 생을 병원에서 보내게 될까 봐. 다시는 집에 가지 못할까 봐.
이따금 엄마는 요양 병원 얘기를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아줌마, 아저씨라고 부르던 이웃들이 거동하기 어려운 노인이 되어 요양 병원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 병원에서 지내는 이들에게 자식들이 면회 온 이야기,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끝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이야기. 요양 병원에서 지내는, 지냈던 지인들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엄마의 얼굴은 슬퍼 보였다. 그리고 불안이 어렸다. 자신도 언젠가 요양 병원으로 가게 되는 건 아닐지, 그곳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건 아닐지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요양 병원에 가는 게 가족에게 버림받는 거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때는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틀린 것 같다. 어쩌면 엄마가 정말로 두려워하는 것은 요양 병원도, 가족에게 버림받는 것도 아닌, 집을 떠나는 것,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자신에게 너무 크다고, 청소하기 힘들다고, 좁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하는 걸 보면, 엄마에게 ‘집’이란 단순히 물질이나 물리적 개념은 아닌 거 같다. 자신이 사는 곳, 남이 없는 곳,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편히 씻고 발 뻗고 쉴 수 있는 곳 그리고 아빠가 있는 곳. 엄마에게 집이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처음 알았다. 엄마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니 신기했다. 그리고 어쩐지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나는 엄마가 처음으로 낯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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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엄마를 보고 아빠가 말했단다. 살아 줘서 고맙다고. 엄마의 손을 잡고 울먹였단다, 아빠가.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아빠의 눈물을 본 적이 없다. 아빠에게 슬픔이라는 감정이 있기는 할까.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다. 아빠는 화내고, 신경질 부리고, 자신이 기분 좋을 때만 웃는 사람이다. 다정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너무도 서툴러 그런 감정을 전혀 못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 일쑤인 사람이다. 그런 아빠가 울먹였다니. 혼자서도 잘 살 것처럼 확언하던 사람이 엄마에게 살아 줘서 고맙다고 했다니.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모르는 유대감, 정, 깊이가 있다는 게 나는 너무도 놀랍고 낯설다. 두 사람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오만했다. 내가 아는 건 아무래도 아주 자그마한 조각, 티끌에 불과했던 거 같다. (25.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