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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Oct 13. 2019

조국과 방배동과 조선일보

조용하고 안락했던 방배동 이야기.

  올해 초인가, 집 근처 횡단보도에서 어떤 키 크고 잘생긴 사람이 성큼성큼 걷는 것을 보았다.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조국(曺國)이었다. 며칠 뒤에 들으니 조국이 내가 사는 아파트 옆 동에 산다고 했다. 그렇잖아도 우리 아파트를 마음에 들어하던 우리 부부는 괜스레 탐탁했다. 직장 근처 전셋집을 뒤지다 네이버로 2시간 만에 찾은 곳이지만, 우리는 이 아파트를, 이 동네를 사랑한다. 교통이 좋으면서도 조용하고, 나무가 우거지고 공기가 좋아서다.


 법조계에서 일하면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에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관심을 두면 둘수록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 사법개혁, 검찰개혁으로 보였다. 때문인지 문재인 정부에게도 무리한 기대를 두지 않았다. 그저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주었으면 했다. 그동안 후퇴했던 민주주의를 2007년 이전으로만 돌려놓아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국이 민정수석이 되었다고 했을 때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조국이 법무부 장관 후보가 되었을 때,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나는 그렇게 한 사람에게 모든 이목이 쏠리는 것을 오랜만에 보았다. 이명박, 박근혜, 최순실, 문재인 이후로 처음이었다. 이상했다. (넷 중 셋은 대통령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대통령이나 마찬가지 권력을 휘둘렀다) 조국은 그저 법무부 장관 후보일 뿐인데, 국민들이 법무부 장관 인선에 이렇게 신경을 썼나? 언론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누가 되든 검찰개혁은 요원한 일인데, 왜 이렇게 난리일까. 잘못된 생각일까 싶어 어디에 이야기는 못하고 혼자서 이상하다, 이상하다 했다.


 저녁 회식 중에도 사람들은 식당 TV에 나오는 조국 청문회를 보며 조국의 잘잘못을 논했다. 나는 그저 추임새만 넣었다. 그렇죠. 조국이 잘못했네요. 추석 때 집에 가니 아버지는 조국 옹호론에 한창이었다. 어머니는 '아이고 지겹다. 무슨 말만 하면 조국 이야기다'라며 하소연했다. 고개만 끄덕였다. 아버지는 나보다 조국 딸 학력에 대해 잘 아는 것 같았다.


 아침에 출근하는데 기자들이 아파트 울타리에 붙어있었다. 조국이 결국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고 했다. 기자들은 울타리 수풀가에서 베란다를 찍고, 아침에 출근하는 조국을 찍기 위해 진을 쳤다. 걸어서 출퇴근하다 보니 계속 기자들과 마주쳤다.


 한 달 전인가, 집에서 쉬는데 어디서 자꾸 고함소리가 들렸다. '사퇴하라. 사퇴하라'. 아이고 올 것이 왔구나. 조용해서 좋은 우리 동네에, 고요가 깨지자 당장 짜증부터 났다. 저녁 아홉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조국이 사는 옆 동에 가보니 보수단체 회원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고함치고 있었다. 당장 근처 경찰관에게 따지니, '지금 압수수색이 다 끝나간다. 압수수색 끝나면 저 사람들도 집에 갈 거다. 지금 건드리면 더 시끄럽고 피곤해진다.'라고 했다. 그제야 압수 수색하는 것을 알았다. 과연 보수단체들의 고함에는 광기가 있었다. 주민들도 뒤에서 수군거리기만 할 뿐, 따지지 못하고 구경만 했다. 그게 최선이라는 것을 주민들도 경찰들도 알았다.


 이제 좀 조용해지나 싶었는데, 3주 전부터 토요일 저녁만 되면 서초동 집회 소리가 여기까지 넘어온다. 아마 조국 장관도 집에서 베란다 문을 열어놓는다면 들릴 것이다. 나는 애써 무시했다. 아버지가 서초동 집회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덤덤했다. 촛불집회와는 다르다. 나까지 갈 일이 아니라고.


 '검찰개혁, 조국수호'집회는 매주 커지고 있었다. 잠깐 하다 말겠지, 사람이 많아봤자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시 또 토요일 저녁, 저녁 먹고 산책하는 김에 서초동에 가보았다.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어 소화시킬 겸 가보았다. 궁금하기도 했다. 무슨 말을 그렇게 외치고 싶어 집회를 하는지. 황금 같은 토요일 저녁에 몸 끼는 만원 지하철 타고 서초동까지 와서 하고 싶은 말이 무언지.


 가보니 사람이 정말 많았다. 30대에서 50대 사이가 가장 많았고, 자녀를 데려온 가족도 많았다. 지난 '국정농단 촛불집회'만큼 다양한 나이 때가 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보다 질서 정연했다. 그들은 쌀쌀한 저녁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검찰개혁과 조국수호를 외치고 있었다. 서초대로와 반포대로를 가득 메운 사람들. 그 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회인데도 거리가 깨끗했다. 광우병 집회, 국정농단 촛불시위를 거쳐 우리의 집회문화는 이만큼 성숙해 있었다. 경찰은 진입로와 출입로를 나누어 집회를 통제했고, 사람들은 그 통제에 순순히 따르며 갈 길을 갔다. 그러니 집회 현장에 들어가기도, 빠져나오기도 쉬웠다. 아마 나처럼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많으리라. 누에다리를 기점으로 반포동 성모병원에는 보수단체 시위가 한창이라고 했다. 성모병원에 박근혜가 입원하고 있어서라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평온하고 유쾌하게 시위를 이어갔다. 정돈된 모습에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서초대로와 반포대로, 박근혜와 대검찰청과 대법원을 잇는 집회의 삼각지가 만들어졌다.


 국민들이 집회로 첨예하게 맞붙는 가운데, 이렇게 미적지근한 반응과 생각을 가진 내가 굳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이한수가 쓴 칼럼, '민주정이 타락한 형태로 진입했다' 때문이다.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작금의 현실을 타락한 민주정, 중우정치라고 규정하고 있다.


 기가 찼다. 일단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 몰라도 조선일보 기자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싶었다. 그리고 타락한 민주정이라니, 민주정의 타락은 이명박 박근혜가 만든 것이 아닌가. 그것을 되돌려놓은 것이 촛불시위이고, 그 시위를 했던 국민들이 지금 나뉘어 집회를 할 뿐이다. 집회는 민주주의의 산실이고, '국민이 주인'임을 외치는 가장 적극적이고 기본적인 표현방식이 아닌가. 설령 조선일보의 말이 백번 옳아 민주정이 타락했다고 해도, 그 타락은 언제부터이고 누가 만들었는가. 타락한 민주주의의 단물을 열심히 빨며 이명박 박근혜를 이용하던 당신들이 이제 와서 중우정치라니 기가 차다. 어디서 배운건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사림 정치를 논하나, 자신이 그 타락한 사림의 전형이고 중우정의 첨병임은 모르는 모양이다. 진심으로 작금의 현실이 중우정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을 고치고 싶다면 자기 자신부터 돌아볼 일이다. 우리의 민주정은 잘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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