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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Oct 25. 2019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걸어라

법학전문대학원 협의회,  <로스쿨 창> 7-8월호에 기고한 글.

 여러분은 왜 로스쿨에 입학하였습니까,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라고 답변할 것이다. 그럼 왜 변호사가 되려고 합니까,라고 누가 묻는다면 어떨까. 공적인 자리에서라면 대부분 자신이 입시 때 쓴 ‘자기소개서’ 대로 답변할 것이다. 반면 술자리에서 친한 친구가 같은 질문을 했다면, ‘전문직이니까’라고 답변할 사람이 많을 것이리라 예상한다.


 필자가 보기에, 변호사의 가장 큰 매력은 ‘전문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직은 ‘나이 먹어서도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고, 자기 소신을 지키며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말한다. 이러한 직업을 누가 마다할까.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 소위 ‘사’ 자 직업들이 그렇다. 자기 자신이 브랜드고 사장이어야 한다. 국가에선 어려운 시험을 통해 소수에게만 전문직 자격(혹은 면허)을 부여한다. 그렇다 보니 자긍심도 생긴다. 변호사보다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많지만, 변호사보다 명예롭고 자부심 있는 직업은 많지 않다.


 전문직의 ‘장점’은 스스로 판단하고 남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아도 된다’라는 것이다. 전문직의 ‘특징’은 스스로 판단하고 남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장점’보다 ‘특징’에 주목하자. 전문직이 아닌 자의 지시대로 업무를 수행했다간 전문직 자격(혹은 면허)이 날아간다(법조윤리 수업에서 배웠을 것이다). 전문직 자격의 무게는 그렇다.


 그런데 로스쿨에 온 高학력 高성적자들 대부분은 남의 말을 지나치게 잘 들어온 듯싶다. 로스쿨에 오기 위해서는 모범생이어야 했고, 모범생들은 대부분 부모님, 선생님의 말에 순종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너무 순순히, 너무 착하게만 살아왔다. 그러나 전문직은 다르다. 변호사는 남의 말에 순응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자기 생각을 밀어붙일 줄 알아야 한다. 그 연습을 로스쿨을 졸업한 후 변호사가 되어서 하려고 하면 늦다.


 변호사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턴 남의 말에 대해 ‘너가 뭔데 나한테 그런 말을 해?’라는 질문을 항상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 사회에 나가면 여러분에게 폭언을 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의뢰인, 직장상사, 재판정의 판사까지... 이 질문이 예비되어 있지 않으면 수많은 사회생활 선배들이 여러분을 비난하고, 소위 ‘후려치기’ 하면서 흔들어댈 것이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로스쿨을 다니면서 ‘모범생 콤플렉스’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스스로 생각하여 결정하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라니,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린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의 뒷담화에 상처 받지 말고 학업과 인간관계를 비롯한 로스쿨 생활에 전념’했으면 한다. (여기서 말하는 뒷담화는, 남이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을 헐뜯는 행위를 말한다) 로스쿨 생활은 시험기간의 집합이다. 변시 합격률은 가혹하게 낮다. 이런 살풍경(殺風景)에서 학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예민해진다. 서로 다투고 헐뜯기 쉽다. 아마 로스쿨을 다니면서 한 번도 뒷담화를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뒷담화를 하지 말자’는 허황된 구호다. 그 대신 ‘뒷담화를 어쩌다 들어도 상처 받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한 번쯤 뒷담화를 하므로, 누구나 한 번쯤 자기 욕하는 이야기를 건너 건너 들을 수밖에 없다. 그럴 때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무시’다.


 생각해보라. 누군가 당신의 뒷담화를 한다면 둘 중에 하나다. ①당신의 친구가 아니거나, ②친구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당신을 미워하고 있던 경우다. 진실한 친구라면 뒷담화를 하지 않고, 당신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앞에서 지적한다. ①친구가 아닌 사람은? 앞으로도 인생에서 볼 일이 없다. 당신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엑스트라도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깔끔하게 무시해라. 그런 일에 신경 쓰느니 오늘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게 인생에 더 이롭다. ②친구인 줄 알았는데 내 뒷담화를 했다? 이제 친구가 아니다. 그냥 스쳐 가게 두어라. 어차피 졸업하면 서로 볼 일 없고, 어쩌다 본다고 해도 당신에게 영향력이 없다. (여러분이 변호사가 된 뒤에는 상급자의 앞담화가 시작된다. 뒷담화에서 상처 받기 시작하면 사회생활이 암담해진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이 있다(여기서 무소는 뿔이 하나인 인도코뿔소를 가리킨다). 원시 불교 경전인 ‘숫파니파타’에 실린 ‘무소의 뿔’ 편에 나오는 문장이다. ‘무소의 뿔’ 편을 거칠게 요약하면, 수행하는 사람은 쓸데없는 인연을 만들지 말고, 나쁜 벗들을 만났을 때는 차라리 혼자서 수행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수행’에 ‘공부’를 대입해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차피 공부는 혼자서 하는 것이다. 왜냐? 정말 당연하게도, 변호사 시험은 혼자서 쳐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로스쿨 공부는 스터디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졸업 이후에도 법조계에서 자주 마주칠 테니 로스쿨 인간관계도 신경 써야 한다. 수업별 스터디도 학점에 큰 도움이 된다. 필자도 3년 내내 스터디를 같이했던 동기들과 지금까지 친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공부는 혼자 하는 것임을 잊으면 안 된다. 교우관계와 스터디는 말 그대로 ‘보조’하는 역할일 뿐, 학점과 변호사 시험 성적은 개인의 공부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점에서 ‘숫파니파타’에서 말하는 ‘불교식 수행’과 ‘로스쿨 공부’는 같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스터디원을 만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대단한 행운이므로 함께 변호사 시험까지 가도 좋다. 그러나 서로의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면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차라리 혼자 공부하는 게 낫다. 필자가 다니던 로스쿨에서도, 문제없이 운영되던 스터디들이 3학년이 되자 서로의 공부방법은 간섭하지 않고 서로의 공부시간과 등하교 시각만 관리하고 함께 밥이나 먹는 ‘밥터디’로 전환되었다. 로스쿨 2년 다녀보고, 각자 자신만의 공부방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태도는 변호사가 되는(become) 데에도 도움이 되지만, 변호사로서 활동하는 데에도(behave) 도움이 된다. 변호사는 ‘전문직’이므로 경력이 중요한데, 경력이야말로 누가 정해주지 않는다. 정답이 없으므로,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도록 자신의 진로는 자신이 정해야 한다.


 현 로스쿨 체제에서 학생들의 당면 목표는 ‘변호사 시험 합격’이다.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도 현실이 그렇다. 변호사 시험 합격을 위한 공부방법은 다양하고 각자 자기에게 맞는 방법이 있으므로, 여기에서 조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3년간 공부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텐데, 지속 가능한 공부를 위해 스트레스 관리법을 추천하려 한다.


 바로 ‘걷기’다. 신체적 장애가 없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고, 평소에도 하는 운동이다. 그걸 좀 더 자주 하면 된다. 공부하다 집중이 안 되면,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걷자. 어디를 걷든 상관없다. 언제 걷든 상관없다. 공부하던 중간에 걸어도 되고, 밥 먹고 소화시키며 걸어도 되고, 등하교 사이에 우회하는 길을 추가해서 걸어도 된다. 30분만 걸으면 엉켜있던 머리가 맑아지고, 이해되지 않던 판례도 저절로 이해가 될 것이다. 진짜다. 변호사가 된 뒤에도 이 방법은 유효하다. 변호사가 된 뒤에도 두뇌활동이 중요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로스쿨 때보다 더 심할 수도 있다. 결국 스트레스 관리법은 꼭 하나씩 있어야 하며, 평생을 두고 만들어가야 한다. 만약 자기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없다면, 자신 있게 ‘걷기’를 권한다.


 이제 이 글의 제목이 이해될 것이다. 여러분은 전문직으로 경력을 쌓아가기 위해 로스쿨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변호사가 되기 위한 공부방법도 전문직의 특성에 맞추어야 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걸어라. 모든 것은 자기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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