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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Dec 02. 2019

펭수, 마미손 그리고 팩트 폭행

조금은 어설프고 제멋대로여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요즘 20-30대에게 펭수가 인기다. 펭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조금 의아할지도 모른다. 저 거대한 펭귄 탈을 쓴 사람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펭수의 인기 요인을 분석하는 기사들은 이미 수없이 많다. 소속사 사장 '김명중'의 이름을 시원하게 불러제끼는 호연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기사도,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감정에 솔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기사도 있었다. 정작 펭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냥 좋다'라고 말한다. 필자도 펭수의 팬으로서 애써 분석해 보았으나, 펭수의 매력 포인트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니 앞서 열거한 펭수의 인기 요인은 모두 맞다.


 펭수의 인기요인 중  '판타지' 내지 '허구성'을 추가로 꼽고 싶다. 펭수의 네이버 연관검색어 중에 '펭수 정체'가 있다. 펭수가 진짜 거대한 펭귄일 리 없다. 펭수의 주 인기층인 20-30대는 다 자란 성인이다. 직장에서 일을 하는 어엿한 사회인이다. 그러니 펭수의 정체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펭수 팬들은 스스로에게 외친다. '펭수는 펭수다' , '펭수는 펭수로만 봐달라'... 고 하지만 그래도 궁금증을 억누르긴 힘들다. (이미 네이버에 검색하면 정체는 다 나온다)


 펭수라는 존재 자체가 허구이고 판타지다.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거짓이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알고 있으며, 너그러이 용서한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공유하면서 팬층은 단단해진다. 뻔한 거짓말을 공유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어린이들이 갖는 판타지(Fantasy)를 20-30대 ‘어른이’들이 갖는 것. 그게 펭수의 인기 요인 중 큰 부분이라 생각한다.


 래퍼 마미손도 마찬가지다. 분홍색 헝겊 마스크 안에 어떤 래퍼가 자리하고 있는지, 우리는 모두 안다. 하지만 애써 말하지 않으며, 마미손이 출연하는 TV프로에서는 이를 대놓고 희화화한다. 2011년 데뷔한 래퍼가 가면을 쓰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음악적 시도를 이어가는 모습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뻔뻔하게 가면을 쓰고 이상한 노래를 만들어도, 사람들은 너그럽게 눈감아준다. 공공연한 거짓을 공유하고, 이 거짓을 통해 각종 통제와 장애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 자유를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이를 판타지라 한다.


 '사실'은 때로 '진실'과 같은 말로 쓰이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사실은 때로 잔인하고, 뼈아프다. 신문기사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혹은 서로 언쟁을 벌일 때 '팩트' 혹은 '팩트체크'라는 말을 자주 쓴다. 정치 유튜브에서 특히 자주 쓰이는데,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고 싶을 때 그 주장의 근거가 '팩트'가 아님을 지적하면서, '팩트체크'조차 하지 못한 상대를 비난할 때 쓰는 방법이다.

 '사실'은 상대방을 폭행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친구끼리, 혹은 인터넷상에서 하는 농담이지만 '팩트 폭행'이 그것이다. 여기서 “폭행”이라는 단어를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었던 현실을 낱낱이 밝힐 때, 그것은 폭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면을 쓰는 순간, 거짓을 공유하는 순간, 허구와 판타지를 인정하는 순간 날카로운 팩트들은 설 자리가 없다. 펭수와 마미손 열풍은 말한다. 팩트는 잠시 내려두고, 판타지로 서로 보듬어 주자. 칭찬할일이 없으면 가끔은 만들어서라도 칭찬해 주자. 하는 말이 사실과 조금 다르더라도 지적하지 말고 넘어가 주자. 아주 사소한 성취라도 이루었다면 박수쳐 주자. 조금은 어설퍼도 사랑받는 마미손처럼, 조금은 제멋대로여도 사랑받는 펭수처럼. 우리도 어설프고 제멋대로지만,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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