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도 없는 내가 4천 원을 지니고 다니는 이유.
한 달 전부터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4천 원이 있다. 소지품을 되도록 최소한만, 가볍게 하고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지갑 없이 신분증과 신용카드만 카드지갑에 넣고 다니고, 필요한 때가 아니면 가방도 없이 맨손으로 다닌다. 현금은 언젠가부터 거추장스러운 무엇이다. 카드로만 결제하다 보니 어쩌다 현금을 손에 쥘 때면 이게 부루마블 돈인가 싶게 낯설다.
그런데도 4천 원을 굳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이유가 있다. 우리 동네 “청과물 트럭” 때문이다. 신혼집을 강남에 마련하면서 처음으로 강남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곳은 대한민국 어느 곳보다 물가가 비쌌다. 과일이나 채소 하나를 사려해도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러던 중 아파트 단지 뒤에 서있는 청과물 트럭이 눈에 띄었다. 마침 퇴근하는 시간에 내가 사는 아파트 길목에 항상 서 있었다. 처음 며칠은 슬쩍 지나가며 아주머니에 둘러싸인 트럭을 구경했다. 사람 좋게 생긴 할아버지가 과일과 채소를 팔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나, 바나나가 먹고 싶었는데 마침 노오란 바나나가 퇴근길에 보였다. 할아버지에게 물으니 삼천 원이라 했다. 바나나도 좋아 보이는데 싸기까지 했다. 비상금으로 넣어두던 만원 한 장을 꺼내 지불했다. ‘일시적 노점상’인 만큼 카드결제는 언감생심, 묻지도 않았다.
집에 와서 먹으니 맛있었다. 그 뒤로 브로콜리도 샀다. 집 앞 마트보다 크고 신선한데 가격은 반값이었다. 꽃다발처럼 큰 브로콜리를 두고두고 삶아 먹었는데, 일주일은 먹었다. 방울토마토도 사 먹어보니 맛있었고, 그 뒤로는 믿고 사는 곳이 되었다. 가격도 달라는 대로 드렸는데, 그래도 쌌다.
어느 날은 자두가 좋아 보여 사려는데, 현금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대뜸 “외상으로 가져가” 했다. 여섯 살인가, 동네 빵집에서 곰보빵을 외상으로 가져온 뒤로(어머니는 재주도 좋다며 웃으셨다) 외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쭈뼛거리며 자두를 들고 왔다. 외상. 오랜만에 들으니 생소하고 향수까지 느껴지는 단어였다.
바로 다음날 퇴근길에 3천 원을 갚았다. 어쩐지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이 어렵다고, 한번 외상을 하고 나자 그 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2천 원, 3천 원이었지만 그것은 단골손님을 향한 신뢰의 표시였다. 이제는 트럭에 놀러 오는 아주머니 한분마저 “그때 브로콜리”라며 나를 알아보는 정도였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의 대사를 빌리면 “외상? 강남땅에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던 것이다.
한 달 전, 추석을 일주일 정도 앞둔 때였다. 바나나를 샀는데 또 현금이 없어 3500원을 외상으로 달아놓고 왔다. 그런데 그다음 날 할아버지의 청과물 트럭이 오질 않았다. 그다음 날도. 추석 즈음이라 바쁘신가 했다.
추석이 지났는데도 퇴근길에 트럭은 없었다. 드려야지 하고 4천 원은 챙겨뒀는데. 청과물 트럭은 갑자기 나타났다 갑자기 갔다. 트럭이 없으면 아주머니들이 모이질 않으니 어디 소식을 물어볼 곳도 없다.
퇴근할 때마다 오늘은 트럭이 있을까, 기대한지도 한 달째다. 바지 주머니를 더듬을 때마다 꾸깃꾸깃 접힌 지폐가 느껴진다. 할아버지의 청과물 트럭과 바나나와 방울토마토와 브로콜리를 못 본 지 오래되었다.
별 일 아니겠지. 또 어딘가에서 청과물을 팔고 계시겠지. 주머니의 4천 원이 거추장스럽다. 얼른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