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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Aug 21. 2016

그렇게 어른이 된다.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2016)'에 관한 단상.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는 가족, 인생, 어른에 관한 영화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태풍이 지나간 뒤처럼 마음이 맑고 고요해진다는 것이다.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에서 주로 가족애를 다뤄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료타의 가족. 그러나 이혼하고, 아들은 전처가 키우고 있다.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 분)는 40대의 탐정이다. 말이 좋아 탐정이지, 바람피우는 유부남/녀를 뒷조사하는 것을 주업으로 하니, 그의 어머니는 이웃에게 아들의 직업을 숨긴다.
 아베 히로시, 189cm의 이 중년 배우는, 일본 영화에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단, 일본인답지 않게 키가 매우 크다. 소인국에 온 걸리버처럼, 그가 시내를 걷기만 해도 튄다. 모든 것이 그에게 너무나 작다. 큰 눈과 푹 패인 볼, 중저음이 냉소적이면서 소외된 캐릭터에 잘 어울린다.
 그런 그가 깎지 않은 턱수염에, 산발한 머리로 휘적휘적 좁디좁은 일본 주택가를 걸으면, 어딘가 애잔함마저 느껴진다. 감독은 이런 특징을 잘 이용했다. 이 영화에서 그는 한마디로 '인생이 꼬인 채 나이만 먹은' 어른이다.


아들을 소설가로 소개하는 엄마. 료타 스스로도 자신을 소설가라고 생각한다. 탐정은 소설가를 위한 부업이라고.


 주인공의 어머니 요시코(키키 키린 분)는 사실, 이 영화의 원톱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키키 키린. 74세의, 암 투병 중인 여배우가 이런 존재감을 내뿜을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일단 영화 첫 장면을 도맡았는데, 딸과 함께 아들(료타)을 두고 험담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료타가 대기大器만성형 일지도 모른다는 딸의 말에 요시코는 '걔가 (키가) 좀 크긴 하다만'라고 시니컬하게 응수한다.
 그녀는 돈이 궁해 노모를 찾아온 료타 앞에서 시시콜콜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료타가 고등학교 때 심어놓은 귤나무를 두고 '너를 닮아서 열매도 꽃도 피지 않으면서 키만 자랐다'며 아들을 돌려깐다. 그러면서도 아들에게, '귤나무 나뭇잎을 먹고 애벌레가 예쁜 나비가 되었다'며 은근히 아들을 향한 희망을 놓지 않는 엄마다.
 죽기 전에 '방 3개짜리 멘션'에 살고 싶다며, '서두르지 않으면 나 귀신 될 거야'라며 두 손을 내밀고 귀신 흉내를 내는 이 할머니를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으리라.

40대의 아들에게 장난을 치는 70대의 엄마. 누구나 이 장면을 보면 미소를 지을 것이다.

 어른이란 무엇일까. 민법상 만 19세를 성인이라 한다. 나이를 먹으면 어른으로 대접해 준다는 말이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 번째는 내가 어떤 사람이든지 간에 나이만 먹으면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평등하게.
 두 번째는 서두르지 않으면 나이만 먹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세월은 우리가 진짜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머지 '가족'과 '인생'에 대해서는, 이 영화를 보고 생각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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