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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Mar 27. 2020

이 시국에 극장에 간다면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1917” 감상평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극장이 한산하다. 실내에 장시간 여러 명이 모여있는 것은 코로나19 전염에 매우 안 좋은 행위이므로, 사람들이 극장에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최근 영화관에서 영화를 2편이나 보고도 리뷰를 쓰지 않았다.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 영화 볼 것을 권하기 위해 영화평을 쓰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의 리뷰라면, 극장에 갈 것을 권하기 위해 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극장에 가는 것을 권하기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좋은 영화 2편이 이대로 묻히는 것이 안타까워 넷플릭스로든 VOD로든 보는 것을 권하기 위하여 쓴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18)”과 “1917(2019)”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동명의 원작 소설이 있다. 일본 소설인데, 영화를 보다 보면 일본 소설이 원작인 티가 난다. 좋은 의미에서는 ‘기발하고 반전이 계속되는 흥미로운 스토리’라는 뜻이다. 나쁜 의미에서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흥미 위주로 전환되고,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소시민을 위한 판타지’가 아닌가 싶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유해진 주연의 영화 “럭키(2015)”가 떠오른다. 럭키 역시 일본 소설 “열쇠 도둑의 방법”(동명의 일본 영화도 있다)을 원작으로 하는데, 평범한 소시민이 우연한 기회로 엄청난 돈을 얻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는 점이 같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배우다. 배성우로 시작해서 정우성이 이어가고 정만식, 박지환, 윤제문이 차례로 받쳐주다 전도연이 머리채 잡고 이끄는 영화니까. 여기서 언급한 배우들은 하나하나 기라성 같은 주/조연 배우들이고, 각자의 대표작들이 있거나 씬 스틸러로 불러도 부족할 만큼 좋은 연기를 펼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전도연이다. 영화 중반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그녀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중간부터 나오는 게 신선하고 좋았다’고 말한 그녀는, 등장하면서부터 영화를 이끈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하여 추상적으로만 언급하자면 ‘섹시한 악녀’ 역할이랄까. 헐리우드에는 이런 역할을 했던 여배우들이 많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전도연과 김혜수가 ‘유이’ 하지 않나 싶다. 특히 이 영화에서 전도연은 정말 강력하면서 한편으로는 섹시하고 또 귀엽기까지 한,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다층적인 면을 한 번에 보여주면서 또 동시에 그 모든 면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는, 어렵고도 감탄스런 연기를 보여주었다. 전도연이 화류계 여성을 연기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필자는 “무뢰한(2015)”이 특히 좋다). 그런데도 그 전에서 본 적 없는 새로운 모습이다. 그게 더 대단했다. 그 점에서 코로나19로 이 영화의 흥행이 좌절된 것이 못내 아쉽다. 명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 같아서다.


  영화 ‘1917’로 넘어간다. 세계 1차 대전을 배경으로 했다. 2차 대전에 비하여, 1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드물다. 당시 과학 기술에 따른 전쟁 양상이 드라마틱하지도 않고, 영웅적 면모가 드러나는 사건이 적었기 때문이다. 거칠게 요약하면, 세계 1차 대전은 그냥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허무하게 죽었으며, 손쉽게 죽었고, 계속 죽었는데 계속 병사들을 투입하는 전쟁이었다. 한마디로 의미 없이 수백만의 젊은이들이 죽었다. 영화로 만들래야 만들기가 어렵다.


  샘 멘데스 감독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는 “007 스펙터(2015)”, “007 스카이폴(2012)”,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 “아메리칸 뷰티(1999)” 등으로 이미 흥행과 평단을 동시에 휘어잡은, 거장이라고 부를 만한 유명 헐리우드 감독이다. 그는 세계 1차 대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이야기는 단순하다. 주인공 일행(총 2명은)은 통신선이 끊어져 매복임을 모르고 있는 영국군 2대대를 구하기 위해, 장군으로부터 받은 ‘공격 중지 명령서’를 직접 2대대에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명령서가 제 때 전달되지 않으면 2대대는 공격을 감행하다 매복에 전멸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사람을 살리기 위한 작전이다.

  그 점에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과 유사하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서로 죽고 죽이는 2차 대전 속에서 ‘사람을 살려서 데려오라’는 특이하고 인도주의적인 명령을 받아 각지를 전전하는 군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다른 점은, “1917”은 러닝타임 2시간 동안 약 24시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이다. 또한 주인공 2명을 직접 따라가는 듯한 연출과 원 컷으로 이어지는 듯한 롱 테이크 화면은 현장감을 전달한다. 사실상 전쟁을 체험하는 듯한 시간과 화면 구성이다 보니, 관객이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하기 쉬웠고, “반전反戰영화”의 특성이 극대화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영화가 “기생충”과 아카데미 수상을 경쟁할 만했고, 기생충을 제치고 아카데미 촬영상, 음향효과상, 시각효과상을 수상할만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 정도로 촬영, 음향효과, 시각효과가 뛰어나며 영화의 메시지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영화의 후반 주인공이 꽃잎이 떠다니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장면을 보면,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 ‘오필리아’를 보는 듯이 아름답다.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1852)


  영화 “1917”은 영국 영화지만, 어쩐지 최신 할리우드 작가주의 영화의 경향을 보여주는 듯하다. 핵심 메시지는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를 닮았고, 롱 테이크 촬영 기법은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2014)”을, 화면의 질감이나 이야기 구조는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2015)”를 닮았다.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언급만 하면,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2013)”를 닮은 부분도 있다. 헐리우드 영화의 최신 작가주의 영화이자 유명 감독의 수작이자 아카데미 수상작이라는 점에서, 꼭 한번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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