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중 May 09. 2020

넷플릭스 시리즈 '인간수업' 감상평

정말 끝까지 가면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는 이야기.

**스포일러 없음.


  이틀 만에 10화를 모두 다 보았다. 한국 드라마를 이렇게 몰입도 있게 본 것은 처음이다. 드라마 장르를 좋아하지도 않고, 한국 드라마에는 더욱 흥미가 없다. 심지어 '학원물(학교에서 학생들의 생활과 그들 간의 관계를 묘사한 대중문화의 한 장르)'은 싫어하는 편에 가까워서 그게 영화여도 보지 않는다. 그런데 조연으로 '최민수'가 나온다는 말에 혹했다. 최민수처럼 인지도와 경력을 갖춘 배우가 비중도 적은 '하수인(?)' 역할로 나온다기에 흥미가 생겼다. 어떤 스케일, 어떤 포부의 드라마길래 최민수를 저런 역할로 써먹는 걸까? 하고 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Extracurricular, 2020, 감독 김진민, 각본 진한새)'이다.


 긴 말 필요 없이 일단 재미있다. 1화를 보면 계속 보게 된다. 최소한 7화까지는 멈출 수 없다.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고 쌓였던 복선이 드러나며 흥미를 자아낸다. 등장인물 하나하나 모범생, 찐따, 일진, 빵셔틀 등 고등학생 역할은 물론 조폭에서 화류계, 포주 여성까지 어떻게 그렇게 캐스팅을 잘했는지 찰떡이 따로 없다. 주요 등장인물은 10~15명 정도인데 모두 개성이 넘친다. 익숙한 배우들보다 낯선 배우들이 많은데, 모두 맡은 연기를 훌륭히 해내어 지적할 부분이 없다.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 4명.

 

 물론 주인공들이 범죄자라는 점에서 이 '재미'에 대해 한번 곱씹을 여지는 있다. 감독도 주인공들의 범죄를 옹호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드라마는 질척이지 않고 매력이 넘친다. 대부분의 영화, 드라마는 주인공을 관객이 응원할 수 있게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주인공이 영화에서 50~500명을 죽이더라도 죽는 사람이 모두 악당이거나, 괴물이거나, 적국의 군인이라면 정당성이 부여된다. 그래야 관객이 그 살인을 즐길 수 있다(마블 영화 시리즈를 보라). 하지만 이 드라마는 주인공 오지수(김동희 분)가 부모님에게 버려지고 혼자서 생계를 꾸려가야 한다는 '최소한'의 정당성만 부여한다. 오지수는 똑똑하고 가끔 용감하지만 대체로 지질하며, 비겁하고, 위기 대처능력도 떨어지는 청소년이다. 오히려 능력 있고 매력 넘치는 것은 배규리(박주현 분)인데,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얘도 정상은 아니다. 때로는 등장인물들을 욕하고, 때로는 응원하고, 때로는 귀엽게 바라보다 보면 드라마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N번방 이슈와 연계되어 연일 화제가 되는 드라마인데, 막상 보고 나면 N번방과 유사한 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소재로 할 뿐, 이 드라마의 핵심은 성범죄가 아니다. 오히려 고2 청소년들이 당하고 범할 만한 '죄와 벌'이 핵심이다. 그 나이 때에 마약 판매를 하겠나 연쇄살인을 하겠나, 실제로도 가장 빈번히 적발되는 것이 학교폭력과 성매매 문제니까 드라마가 이를 다루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물론 N번방 사건과 같이 미성년자가 성매매 범죄의 주도자, 성범죄 가해자가 되었다는 점은 가벼이 넘어갈 수 없다. 하지만 "청소년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이 단순히 몇몇 사이코패스 청소년의 문제가 아니라, 온전히 어른들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이 드라마도 N번방 사건과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간단하다. 주인공이 처음에는 죄책감이나 경각심 없이 저지른 범죄(성매매 알선)가, 점점 커지고 일이 꼬이고 꼬여 폭발하는 지경에 이른다.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이 달려나간다)


 주인공 오지수와 담임선생의 대화로 시작하는 이 드라마는, 오지수가 전과목 1등급의 성적 우수자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꿈도, 가고 싶은 대학도, 별다른 목표도 없음을 담담히 말하면서 시작한다. 이 드라마가 청소년 관람불가인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감독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에게 말한다. 어른들이 가장 원하는 학생이 여기 있다고. 우리 교육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만들어 내고 있는 학생은 바로 오지수가 아닌가. 점수 맞춰 대학 가고, 하고 싶은 건 없지만 뒤쳐지면 혼나니까 어떻게든 공부해온. 그런 모범적(?)인 인간상이 일반인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출발이다.



 드라마는 그다지 숨길 내색도 없이 극 중 고2 청소년들의 범죄 행각이 곧 사회문제임을 드러낸다. 주인공 오지수와 배규리가 소속된 동아리도 "사회문제 연구반"이고, 극 중 가장 많이 나오는 선생님인 조진우(박혁권 분)는 사회 선생님인 듯 수업 시간마다 사회문제와 인권을 언급한다. 감독은 그렇다고 주인공들의 범죄를 합리화할 생각도 없다. 등장인물 대부분 자기 이야기를 온전히 화면에 내놓지 않는다. 당연히 인물들에게 온전히 감정을 이입하기 힘들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들도 한다. 감독은 시청자들로부터 이해받으려 하지 않고 그저 보여준다.


 인간수업 포스터 문구처럼 '틀린 답에 목숨을 걸'고 멈추지 못하는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는 청소년들의 앞에는, 무엇이 있을까.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개운치 못한 뒷맛이 남는다. 그러나 아마도 그것이 각본가와 감독이 의도했던 반응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시국에 극장에 간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