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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Aug 08. 2020

다만 극장을 나서면 남는 게 없더라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19)" 감상평

 코로나 19 이후 6개월, 한국 극장가는 얼어붙었다. 최근 두 달 새에 개봉한 기대작 3편을 보았는데. 연상호 감독의 "반도(Peninsula, 2020)", 조일형 감독의 "#살아있다(#ALIVE, 2020)",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DELIVER US FROM EVIL , 2019)"가 그것이다. 추천할 만한 영화가 아니면 감상평을 쓰지 않는데,  "반도", "#살아있다"는 기대에 못 미쳐서 굳이 감상평을 쓸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그나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추천할 만하다.


  이 영화의 장점은 두 가지, 배우들의 연기와 스타일리시한 화면이다.

이정재와 황정민이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배우들의 이름만 나열해도 이유를 알 수 있다. 이정재와 황정민은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지만,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몇 남겼기에 짚어둔다.

  황정민은 그동안 수많은 한국영화에 나왔다. 관객이 식상하지 않으면 이상하다. 황정민도 각 영화마다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각 영화마다 제대로 녹아들고, 세부적인 면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일에 찌든 40대 아재+ 냉혹한 킬러"를 적절히 섞어 황정민만 할 수 있는 킬러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특히 간간히 보이는 그의 눈빛이나 표정 연기는 왜 황정민을 캐스팅하였는지, 관객을 납득시킨다.

  이정재 역시 맹목적이고 잔인한 킬러 역할을 제대로 표현해 냈는데, 중간중간 슬로 모션으로 그의 액션을 보여줄 때, 휘두르는 칼보다 타오르는 눈빛이 더 살인마 다웠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50을 바라보는 이정재와 황정민에게 대단한 액션을 기대하는 것이 어불성설일 것이다. 이 둘은 눈빛으로 액션을 진짜로 바꾼다.

  이정재와 황정민으로 부족한지, 영화는 조연들도 유명한 배우들로 캐스팅한다. "박열"에서 후미코 역으로 인상 깊었던 최희서, "기생충"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박명훈, 드라마와 영화, 예능에서 활약하는 오대환 등을 적은 분량의 조연으로 썼다. 게다가 충무로에서 가장 주목받는 배우 중 하나인 박정민이 조연 같은 주연으로 나오는 것은 의외다. 박정민은 "시동", "타짜: 원 아이드 잭", "변산" 등에서 원톱 주연으로 나온 바 있는데,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 "사바하"에도 나오는 등, 분량에 연연하지 않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어 왔다. (개인적으로 박정민은 분량이 적은 영화에서 더 호연을 펼친 것 같다) 특히 박정민이 맡은 역할은 매우 파격적인데, 의외로 잘 어울렸다.


  두 번째 장점은 스타일리시한 화면인데, 그것도 초 중반에만 한정된다. 화면의 색감이나 인물과 소품의 배치, 화면 구도 등의 미장센이 인상적이면서도 이야기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잘 짜여 있었다. 감독이 많은 연구를 거친 것처럼 보인다. (다시 찾아보니 촬영감독이 기생충, 인랑, 버닝, 마약왕, 설국열차, 마더 등에 빛나는 홍경표였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이야기의 탄력이 약해지고, 다소 반복되는 패턴을 보여주면서 긴장감이 떨어진다.

이 씬의 노을 장면이 특히 예뻤다. 인천 바닷가 라고 하는데 구체적인 장소가 궁금하다.

  위 이야기는 영화의 단점으로 이어진다. 이 영화의 단점은 사실 두 가지 장점 말고는 나머지 부분이 모두 그저 그렇다는 것인데, 무엇보다 이야기 전개가 여러모로 어색하다. 일단 레이(이정재)가 인남(황정민)을 미친 듯이 집착하는 이유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레이는 코엔 형제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의 ‘안톤 시거’를 참고한 듯한데,("사냥의 시간(2020)"의 '한'처럼) 어설프게 따라 해서 캐릭터의 설득력도, 캐릭터의 무시무시함도 안톤 시거에 못 미친다(그래도 레이가 "사냥의 시간"의 '한'에 비하면 훨씬 낫다). 인남이 일본-한국-태국을 이동하며 벌이는 이야기도 개연성이 떨어져 보인다. 이야기가 그 자체로 쌓이고 쌓여 흘러가기보다, 감독이 원하는 미장센을 보여주기 위하여 흐름이 뚝뚝 끊기면서 인물이 끌려가는 느낌이다.

 

  게다가 이야기의 끝에 가면 관객이 능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로 끝맺는데, 그러면서도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언지 의아해진다. 결국 이렇게 끝날 것을 누구나 알았는데, 결말에 반전을 마련해 놓지 못했다면, 결말에 이르는 과정에서 관객에게 감동을 주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영화는 결말을 향해 허겁지겁 가다 보니 그 과정에서 제대로 메시지를 던지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영화를 보고 나면 이정재와 황정민의 눈빛 싸움, 박정민의 간드러진 연기만이 떠오를 뿐, 이야기는 별달리 기억에 남지 않는다. 결국 극장을 나서면서 남는 것은 스타일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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