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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Aug 29. 2020

두 번 보아야 완성되는 영화

영화, 테넷(TENET, 2020) 리뷰

 사람들의 평이 맞았다. 한번 봐서는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어렵고, 스포를 하려고 해도 쉽지 않고, 스포를 들어도 그게 스포인지 알기 어려운 영화, 영화를 보기 전 양자역학에 대한 사전지식을 알아두어야 하고, 전날 푹 자 두어야 하며, 보는 내내 집중력을 잃지 말아야 하는 영화, 라는 평이 있었다. 대체로 맞다. 하지만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라는 영화 속 대사가 평으로 가장 적절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TENET, 2020)이다.


 영화는 TENET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포스터를 본다면 이 글자가 N을 중심으로 E와 T가 옆으로 펼쳐져 있는, 대칭적인 단어임을 알 것이다. 이 영화 자체가 그렇다. 종이의 한쪽 절반에 물감을 짜 넣고 반으로 접으면 대칭적인 그림이 나오는 '데칼코마니'처럼, 영화는 대칭적인 두 개의 쌍을 보여준다. 영화 내내 "대칭적인 두 개의 쌍"이라는 상징은 자주 반복된다. 가운데가 홀쭉하고 두 개의 삼각뿔이 붙은 모양의 모래시계를 생각해도 좋다.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생각해도, 캐릭터들을 생각해도 대부분 두 가지로 분류되어 각자 쌍을 이룬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라는 축을 중심으로 쌍을 이루고, 시간의 역행과 순행이 쌍을 이루며, 주인공(극 중 이름이 나오지 않음)과 주인공의 파트너 '닐'이 쌍을 이룬다. (영화 중반에 대칭적으로 쌍을 이루는 레이싱용 요트가 나오는데, 그것도 감독이 의도한 모양 같았다)

주인공과 닐. 자세가 대칭적이어서 데칼코마니 같다.



 영화의 이론적 배경은 엔트로피와 양자역학 등등이라고 하는데, 문돌이인 필자가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영화를 한번 봐서는 이 영화를 모두 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1번만 보아도 느낄 수 있는 재미와 스토리가 충분하기에, 1번 보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을 늘어놓아보려 한다.


 일단 "엔트로피"의 개념만 알아도 이 영화를 이해하기 수월하다. 고등학생 때 비문학 지문으로나마 들어보았을 것이다. 엔트로피를 거칠게 설명하면 '무질서도'인데, 아무런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으면 세상의 물질들은 시간이 갈수록 무질서해진다는 것이다. 즉 시간이 지날수록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면 시간도 거꾸로 갈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에서 이 영화의 '인버전 (엔트로피를 반전시켜 시간을 거스르는 기술)' 개념이 나왔다.


 테넷 이전, 놀란 감독은 최신 과학이론을 접목시킨 영화를 보여준 바 있다. 인터스텔라(2014)가 그것이다. 블랙홀과 웜홀이 나오고, 시간의 초월과 양자역학이 영화 곳곳에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잘 몰라도 '인터스텔라'의 핵심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테넷도 그렇다. 엔트로피, 양자역학, 시간의 역행, 타임 패러독스 등을 몰라도 스토리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 영화의 핵심은 이 이해하기도 어려운 최신 과학기술을 사용하여 세상을 파멸시키려는 악당과, 이 과학기술로 세상을 구하려는 주인공의 대결이라는 점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놀란 감독의 전작들이 많이 떠오른다. 007 영화를 연출하고 싶었다던 놀란 감독의 말처럼 영화 전체적으로는 첩보 영화의 색채를 띄면서, 어떤 부분은 다크나이트 3부작(2005~2012)과 닮아있고, 어떤 부분은 인셉션(2010), 어떤 부분은 인터스텔라(2014)와 닮았다(프레스티지와도 닮았다는데 보지 못했다).

  심지어 덩케르크(2017)와도 닮은 부분이 있는데, 덩케르크의 줄거리만 봐도 그렇다. 덩케르크는 잔교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한 시간을 순서에 상관없이 뒤섞는다. 이처럼 각 장소마다 흐르는 시간의 길이가 다른데도 이를 교차하다 보니 때로는 시간을 역행하는 것처럼 보이고, 각자의 시간이 만나는 장면이 그 자체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테넷도 각자 흐르는 시간이 다르고, 심지어 각자 시간을 역행하는 시점도 달라 영화 그 자체로 역동적이다. 생각해 보니 덩케르크와 테넷은 핵심 주제도 닮았다. 덩케르크의 주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기'다.


  영화는 CG를 쓰기 싫어하는 놀란 감독 특유의 영상미와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그 웅장함과 액션, 음향 효과에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도, 결말에 이르러서는 약간의 반전과 감동마저도 준다. 주인공 역을 맡은 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매력도 좋고, 닐 역을 맡은 로버트 패틴슨과 캣 역할을 맡은 엘리자베스 데비키의 연기도, 안드레이 사토르 역을 맡은 케네스 브래너의 연기도 좋다.

 그중 주목할 만한 연기는 두 명. 케레스 브래너와 로버트 패틴슨이다. 오히려 주인공인 데이비드 워싱턴은 신선하고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인물이긴 하나, 연기가 뛰어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케레스 브래너는 그동안 보여주었던 중후하고 지적인 연기를 탈피하고, 폭력적이고 우울하며 신경질적인 역할을 맡았다. 역할을 제법 잘 소화해서, 덩케르크의 해군 중령을 맡은 그 영국 신사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로버트 패틴슨은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연기 어색한 꽃미남으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사실상 이 영화의 두 번째 축이자, 감정선 역할을 맡았는데 자연스러우면서 개성 있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이 로버트 패틴슨의 연기와 엘리자베스 데비키의 기럭지일 정도.


 주인공이 흑인인 첩보 영화는 처음 보아서 그런지 신선했다. 주요 정보원이 인도 여성인 점도 신선하다. 굳이 PC(Politically Correct) 관점에서 보지 않더라도, 이 영화에는 튀는 매력이 있다. 주인공이 인도에 가면 인도 사람처럼 보이고, 미국에 가면 미국 사람처럼, 영국에 가면 영국 사람처럼 보였는데, 오히려 흑인 첩보원이 더 첩보원에 어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놀란 감독만의 007 시리즈 비틀기도 있는데, 주인공보다 여자가 더 키가 크다거나, 주인공이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섹스어필하려 하나 여자 주인공(007에선 본드걸)에게 씨알도 안 먹히는 점 등등이 위트 있었다.


주인공의 수염 때문인지 어찌 보면 인도인, 어찌 보면 아랍인, 어찌 보면 아프리카인 느낌도 난다.


 최대한 스포일러를 자제하였는데, 이제 와서 한 가지 스포 아닌 스포를 하자면 이 감상평의 제목이 스포일러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끝까지 보아야 이해할 수 있는 스포일러이므로, 스포일러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어쨌든 두 번 보아야 완성되는 영화인데, 그것은 영화의 설정이 지나치게 어려워서인 점도 있지만, 영화 스토리상 감독이 그걸 의도한 것 같아서다. 특히 로버트 패틴슨의 마지막 대사는 마치 '이 영화는 한번 더 보아야 완성되는 영화야'라고 관객에게 외치는 것 같았다. 그것은 서두에서 말했던, '대칭적으로 쌍을 이루는 무언가에 대한 영화'라는 필자의 느낌과도 일치한다.


  ‘두번 보아야 하는 영화’는 달리 말하면 매우 불친절하고, 영화로서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놀란 감독이 아니면 이렇게 비선형적이고 실험적인 영화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놀란 감독은 상업영화 감독임에도, ‘영화라는 예술 장르로 보여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려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그런 면에서 영화 이야기의 복잡함과 미숙함도 좋게 보려 한다. 결국 호감을 담아 평하자면, 두 번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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