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정(2016)을 보고
밀정(2016)은 회색지대에 관한 영화다. 일제 강점기, 친일파와 독립군만 있었을까?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듯, 그 중간에서 갈팡질팡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하나의 재판기록에서 출발한다. 1923년 있었던 '황옥 경부 사건'이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언급하지 않는다(영화를 보고 나서 이 사건을 검색하길 권함).
영화의 두 축은 일제 경찰과 의열단이다. 의열단에는 단장 정채산(이병헌 분)과 김우진(공유 분), 연계순(한지민 분)과 같은 열혈 의열단원이 있고, 일제 경찰에는 히가시 부장(츠루미 신고 분), 하시모토 경부(엄태구 분)가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정출 경부(송강호 분)가 있다. 그는 임시정부에서 일하다 일제 경찰로 돌아선 인물이다. 의열단장 정채산은 이정출을 두고 '우리 쪽에 마음의 빚이 있을 것'이라며 포섭을 계획한다.
그의 예측은 맞았다. 이정출에게는 동료를 배신했다는 죄책감, 마음의 빚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독립할 가망이 없어 보이고, 출세하고 싶다는 욕망도 꿈튼다. 그 사이에서 이정출은 고민하고, 당황하고, 체념하고, 결심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이정출이 재판에서 피고인으로서 진술하는 장면이다. 송강호는 정확히 감독의 의도를 읽었다. 친일파도 독립군도 될 수 있는 그 지점. 그의 말 한마디에 자신의 과거가 검은색으로도 하얀색으로도 채색될 수 있는 회색의 지점. 그 지점을 넘나드는 연기는 가히 신기(神技)에 가깝다.
이쯤 되면 공유의 딱 벌어진 어깨와 슈트 빨, 이병헌의 중후한 목소리, 한지민의 미모는 모두 송강호의 연기에 흐려진다.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독립의 신념으로 중무장한 의열단원은 존경스러우나 감히 따라가지 못하고, 일제에 붙은 친일파들은 이해는 가지만 경멸스럽다. 그런 면에서 영화 밀정은 일제강점기라는 혼란스러운 시대에서 가장 공감하기 쉬운 사람을 주인공으로 잡았다.
관객은 그저 송강호의 감정선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