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중 Aug 24. 2016

Bless you

나의 삼촌 이야기.


 그를 처음  것은 기억도 까마득한  옛날이다. 내가 간신히 엄마와 아빠를 말할 즈음, '아춘(삼촌)' 같이 발음할  있었다. 그는 나의 ()삼촌이자, 엄마의 하나뿐인 남동생이었고, 당시 총각이었으며, 우리집에 '얹혀'살았다.

 어린 조카에게 삼촌이 그렇듯 그도 나의 우상이었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했고, 이소룡이 생각나는 멋쟁이었다. 지적이고 시니컬한 말투도 좋았다. 특히 입바람으로 앞머리를 넘기는 기술이 탁월했다. 그게 너무나 멋있어서, 몇번이고 따라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당시  4살이었고, 생각만큼  되지 않았다.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일하던 그는 사업을 한다며 제주도로 떠났고, 결혼도 해서 자식을  낳았다. 처음에는 카메라 가게,  다음에는 술집을 했지만 모두  되지 않았다. 주변의 권유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과정에서 그의 아내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렇게 별거가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도너츠 가게를 한다고 했다. 정확히는 거기서 일한다고 했다. 타지에서 1 1녀를 키우기 위해 열심히 일만 한다고 했다. 젊을  그는 놀기 좋아하는 멋쟁이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았다. 이민은 사실  자녀의 영어교육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마저도  되지 않았다.
 
 건강이 악화되어 1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 이민은 실패였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는 서울에서 전세집도 구하기 힘들었다.  아이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고, 영어는 잘했지만 대학에는 가기 힘들었다.
 
 그는 나이 50 넘어 다시 우리집에 왔다. 아들은 군대에 가고, 딸은 아내 집으로 갔다. 그는 처음 우리집에 살았던 것처럼 혼자 왔다. 호리호리 하던 몸은 너무 말랐고, 멋지게 넘기던 앞머리는 하얗게 쇠었다. 50넘어 일자리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미국이 그리울 지경이었다. 버릇처럼, 미국에서 도너츠를 얼마나  만들었는지 설명하곤 했다.
 
 학교가는 , 시내로 나가는 삼촌과 단둘이 지하철을 탔다. 한국에서 작게나마 도너츠 가게를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하철 에어컨이 추웠을까, 내가 재채기를 했다. 삼촌이 웃으며 'Bless you'라고 했다. 미국에서는 채기를 하면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믿고, 몸조심하라고 bless you 해준다고 했다. 심지어 혼자 있을때 재채기를 해도 혼잣말로 'bless you' 한다고. 항상 냉소적인 그는 도너츠와 'bless you' 이야기를  때만 웃었다.
6개월  그는 고시원으로 떠났다. 몇달  임대주택을 얻어  자녀와 함께  것이라는 애기를 전해들었다.
 
 어느날 , 거리를 걷는데 재채기가 났다. 삼촌의 'bless you' 생각났다. 어쩌면 혼잣말로 'bless you' 한다는 이야기는, 삼촌 자신의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재채기가 나올 때마다 그가 생각날 것이다. bless you, 그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군대 훈련소와 죽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