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우리 안의 무언가를 죽였다.
입대한 뒤 7주간 훈련소에 있었다. 나는 틈만 나면 손바닥만한 수첩을 꺼내 글을 썼다. 하루에도 몇번씩 수첩을 꺼내서, 날짜 대신 시간과 분을 기록할 정도였다. 모든게 낯설고 힘들었다. 안네의 일기를 쓰는 안네처럼 나는 무작정 적었다.
하지만 그 수첩은 이제 없다. 군생활 중에 잃어버렸다. 대신 수첩보다 선명한 기억이 몇가지 있다.
처음으로 불침번을 섰던 날, 우리는 외부의 침입자가 아니라 내부의 화장실을 잘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밤에 화장실 변기 칸에 들어가 자살하는 훈련병이 있다고 했다. 바로 한달 전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옷걸이에 군화줄을 묶어 그 위에 목을 맸다고 했다. 그렇게 목을 매어봐야 보통의 남성은 발이 땅에 닿는데, 발을 들고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하여 죽었다.
그래서 우리는, 화장실로 들어간 동기가, 그것도 변기 칸으로 들어간 동기가 10분 내에 나오지 않으면 해당 변기 칸을 노크해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실소와 탄식이 함께 나오는 일이다. 나는 화장실 앞에 서서 변기 칸으로 들어가는 저 사내가 10분 안에 나오길 빌었다.
다행히 동기 중에 자살자는 없었다. 다만 변비가 심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갑자기 낯선 환경에 던져지면 생기는 심리적인 변비였다. 심한 사람들은 일주일이 갔는데, 더 큰 문제는 일주일 뒤였다. 일주일 동안 참다가 싼 변을 그때 처음 보았다. 변기가 폭발하듯이 변을 보는 사람도 있고, 화장실 가는 도중에 싸서 헨젤과 그레텔마냥 변이 복도를 점점이 이어지는 광경도 보았다.
하지만 정말 잊혀지지 않는 광경은, 어느날 들어갔던 변기 칸에 적힌 낙서였다. 변기칸엔 훈련병들이 쓴 수많은 낙서들이 있었지만, 이 글이 유독 눈에 띄었다. "What the hell am I doing here? I don't belong here." 내가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거지. 여긴 나와 어울리지 않아. 아마 이 두 문장보다 훈련병들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는 문구는 없으리라.
자살한 그 훈련병은 다른 건물에 살았다. 그가 저 문구를 쓸 리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훈련소는 지난날의 나를 죽이는 곳이다. 조교는 '버린다'고 표현하지만, 우리 모두는 우리 안의 무언가를 죽였다. 죽은 듯이 지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죽음을 애도할 문구가 필요했다.
아마 잃어버린 그 수첩에는, 내가 죽인 무언가가 남아있지 않을까.
그리고 저 영어.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라디오헤드의 'Creep'의 가사였다.
p.s. 승민이가 페북에 올린 creep을 듣다 떠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