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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Sep 11. 2021

군대와 폭력의 역사

넷플릭스 오리지널, '디피(D.P.)' 감상평

  필자는 주로 영화에 관한 감상을 쓰는데, 드라마에 관한 감상평을 쓰는 것은 '인간수업' 이후로 두 번째다. 원작 김보통, 감독 한준희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디피(D.P.)'는 그만큼 완성도와 몰입도가 높다. 시청자들의 평가도 좋고, 완성도도 좋다. 하지만 6화 분량을 쉬지 않고 볼 수 있었던 것은, 이 드라마가 군대를 넓고 깊게, 또한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는 것. 그리고 20대 초반 젊은 나이에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이유로 청춘을 희생했던, 젊은이들의 넋과 삶을 기리고 있다는 것. 그 따뜻한 애정과 위로가 영화 곳곳에서 베어져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필자는 군대 시절을 정말 많이 떠올렸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온 많은 남자들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 ptsd를 호소하는 것을 보면, 감독은 영리하게 대부분의 남자들이 군대에서 겪은 경험을 잘 엮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1화에서 기상나팔이 나오는 장면에서 필자는 더 이상 드라마를 보지 못하고 꺼버렸다. 일주일 뒤에야 다시 1화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과거 군대 생각이 나서) 보기 힘들었던 1화를 지나자 이야기는 정말 술술 지나갔다.


  일단 정해인의 연기가 좋다. 미소년 스타일의 배우를 좋아하지 않아서, 정해인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이 드라마에도 어울리지 않는, 너무 곱상하게 생긴 배역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이 드라마 내내 그는 적당한 우울함과 차분함, 잔잔한 분노를 맡아 극의 심층부를 이끌었다. 다소 표현이 적고 과묵한 캐릭터라 연기하기가 힘들었을 텐데, 과거 이미지와 다르게 뚝심 있고 거친 캐릭터를 잘 소화했다.


   드라마를 끝까지   있게   것은 역시 구교환이다. 정해인을 비롯하여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어둡다. 언제나 피해자가 있고 언제나 폭력과 분노, 슬픔이 있다. 그리하여 이야기가 지나치게 우울해지려고  때마다, 구교환이 등장해 머리채를 잡고 끌어올린다. 생각을 적게 해서(혹은 너무 많이 해서) 밝은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해맑고 가벼운 구교환의 캐릭터는 그의 목소리와 헤어스타일과도  어울렸을  아니라, 진중하고 어두운 정해인의 캐릭터와  어울렸다.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나면 구교환의 팬이  것이다.


  의외로 이 드라마의 주요 인물은 적다. 6명 정도다. 정해인과 구교환, dp 선임부사관 역할을 맡은 김성균, 너무 착한 조석봉 일병과 너무 나쁜 황장수 병장. 이 여섯 명이 극의 중심에 자리 잡고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드라마는 6명의 심리 변화를 찬찬히 따라가면서, 어느 한 명도 허투루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인간에 대한 애정, 인물에 대한 애정, 군인과 청년에 대한 애정이 담긴 작품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지난 필자의 군대 생각이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는 2014 당시 군대 내무반을 정확하게 재현했는데, 2010~2012 군대를 다녀온 필자에게는 그때가 생각나지 않을  없는 모습이었다. 법무실 행정병으로 군생활을 했는데, 그곳에서 후임을 성추행하는 선임들, 따돌림을  이겨 공사용 호스에 목을 매고 죽은 일병, 각종 폭력과 가혹행위들을 직간접적으로 보아왔다.  


  특히 군대의 특징을  잡아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은 '폭력의 재생산' 관해서다. 선임에게 많이 맞은 군인들이 후임을 다시 때린다. 그중에서는 많이 맞아놓고 적게 때리는 사람도, 적게 맞아놓고 많이 때리는 사람도 있는데, 아이러니한 것은 많이 맞아놓고 적게 때리는, 한마디로 '비폭력'적이고 '착한' 선임은 군대에서 별로 인기가 다는 점이다.  중에서 조석봉 일병의 후임인 정해인이  일병을 무시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는데, 어찌 보면 적확한 고증이다. 남을 괴롭히기 싫어하는 선임은, 이상하게 후임에게도 무시당한다. 그게 '폭력의 재생산' 만드는 원인이자 결과가 아닌가 싶다.


   드라마 덕분에 군대에 대해서, 군대에서  이루어졌던 '폭력의 재생산' 대해서,  폐쇄적인 공간에 대해서, 고통스러운 나머지 전역과 동시에 잊고 싶었던 기억에 대해서 떠올리게 되었다. 아마 원작자와 감독은 정확히 그것을 의도했을 것이다. 다시 떠올리고, 잊지 말고, 기억하고 바꾸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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