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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Nov 22. 2021

아름다움

15개월 아들을 돌보는 아빠의 육아일기

15개월 난 아이가 폐렴에 걸렸다. 감기가 조금 오래가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처음 소아과에서는 '감기가 낫던 중에 또 다른 감기에 걸렸다.'라고 했는데, 3일 뒤에 찾아가니 '폐 소리가 안 좋으니 엑스레이 검사를 하자'라고 했다. 그랬더니 폐렴이라고, 축농증도 심해 오늘 당장 입원해야 하고, 최소 5일은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순간 멍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1인실에 아이와 우리 부부가 있었다. 때는 일요일. 당장 월요일부터 우리 모두 출근해야 했다. 비상이었다.


평일 동안 아이를 봐주는 나의 부모님을 긴급히 불렀다. 부모님과 우리 부부 모두 따로 생업이 있었다. 직업이 있는 4명의 성인 남녀가 아이 하나 보는 것도 벅찼다. 그런데 이제 입원까지 했으니 24시간 돌보아야 했다. 일단 우리 부부는 출근 준비를 해야 했기에 일요일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말이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일주일 중 반나절, 육퇴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일요일 저녁 맛집을 찾아 가는 차 안이었을 것이다. 차 안의 공기는 어느 때보다 무거웠다.


성적표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것도 시험기간인 줄도 몰랐는데, 어느새 나는 시험을 치렀고, 낙제점을 받았으며, 그렇게 벼락처럼 낙제 성적표를 받은 기분이었다. 당신은 부모로서 빵점입니다,라는 소리가 차 밖에서 웅웅거렸다. 무얼 잘못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과거를 되짚는 길은 집으로 가는 길보다 멀었다.


아이는 돌이 지나고 나서도 건강하고, 튼튼하고, 활발했다. 돌이켜보면 방심한 나머지, 주말마다 나들이를 간 게 화근이었다. 아이는 콧물을 흘리면서도 잘 웃었고, 잘 놀았다. 그래서 별것 아닌 줄 알았다. 그런데 폐렴이라니. 병원에는 링거를 꼽고 자기 키의 두배가 넘는 수액 거치대를 끌고 복도를 걷는 아이들 투성이었다. 더욱 안쓰러운 것은 어느덧 그것에 익숙해져 신나게 그걸 끌고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는 링거를 꼽는 것을 가장 힘들어했다. 말도 못 하니 그 이상한 행위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월요일에 퇴근하고 병원에 가니 아이는 링거가 꼽힌 손등을 보이며 '우~!' 했다. 이거 얼른 풀어달라는 몸짓이다. 나는 몇 번이고 '빨리 나으려면 잘 꼽고 있어야 해'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얼른 풀어달라며 손을 내 앞으로 내밀뿐이었다.


그래도 아이는 밝았다. 그것이 더 안쓰러웠다. 뽀로로와 바나나 차차가 나올 때마다 두 손을 번쩍 들어 춤추었고, 그때마다 링거가 역류해 빨간 피가 올라왔다. 선명한 붉은색. 처음 보는 아이의 피를 나는 못 본척했다. 회사에 있는 동안 들으니 자주 역류하고 막혀 몇 번 링거를 다시 꼽았고, 그때마다 펑펑 울었다고 했다. 활자로 들은 상황을 나는 상상하지 않았다.


회사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아이의  사진이 있다. 아이를 입원시키고 출근한 첫날 그것을 보니 마음이 철렁했다. 아이는 어느덧   깊숙이  있었다. 나는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일은 해야 했다. 처음 아파보는 아이와 아픈 아이를 두고 일하는 것이 처음인 부모였다.


나의 부모님도, 장모님도,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인생 선배들도 모두 비슷한 이야길 했다. '아이는 아프고 나면 커. 아프고 나면 더 약아진다.'라고. 그저 위로의 말인 줄만 알았는데, 정말 그랬다. 삼일쯤 지났을까. 항생제가 조금씩 들기 시작하면서, 폐렴도 많이 나아지고, 축농증도 제법 진정되었다. 연이은 야근과 출장에 며칠 만에 본 아이는 조금 자라 있었다.


퇴원할 무렵, 아이는 부모를 조금 더 찾고, 애정표현도 더 잘하고, 말도 더 잘 알아들었다. 기저귀 갈자 하면 도망가고 기저귀 입히려 하면 발버둥 치던 아이가, 이제 얌전하게 누워있는다. 싫지만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걸까. 조금의 변화지만 확실한 변화에, 육아 선배들이 했던 말을 떠올린다.


'아름다움'의 어원에 관하여 많은 설이 있지만, '앓음 다움'이 변화한 말이라는 설이 있다. 말 그대로 앓고 난 뒤, 고난과 고통을 이겨낸 뒤의 모습을 두고 '아름다움'이라고 칭한다는 설이다. 어쩌면 아이는 그 앓음을 거쳐갔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어릴 적 열병을 한참 앓고 난 뒤, 열이 내리자 온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퇴원한 뒤 주말, 아이와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아이는 오랜만에 돌아온 집이 반가운지 한동안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뛰어다니고 춤추고 웃었다. 그러다 내 다리에 붙어 나를 올려다보며 웃기도, 안아달라고 팔을 번쩍 들기도, 안아주면 신나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졸리면 나를 살포시 안고 볼을 기대기도 했다. 그 모든 게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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