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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Apr 01. 2021

지난 5년간 가장 자주 들었던 노래(下)

멜론 어플의 '많이 들은 순'을 기준으로 4위부터 1위까지.

(2019.3에 써둔 글을 뒤늦게 올린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Melon)에는 재미있는 기능이 하나 있다. 그중 '많이 들은 순'을 누르면 자주 재생했던 노래 순으로 곡이 정렬된다. 현재의 재생목록을 유지한 건 만 5년 정도. 즉, '많이 들은 순'으로 노래를 정렬하면, 지난 5년 간 가장 많이 들은 노래들이 순서대로 나온다는 뜻이다.

  그 길고도 내밀한 순위, 지난 글에 이어 4위부터 1위까지 공개한다. (해당 노래를 들으면서 읽으면 더 좋다)


4위. 평범한 사람, 루시드 폴 ('09.12.10)


  다시 루시드 폴이다. 그동안 나온 노래 중 가장 옛날 노래다. 사실 들은 횟수로 따지면 이 중에서 4위가 아니라 1위일 텐데, 이 노래가 목록에 여러 번 들어가는 바람에 횟수 집계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만큼 좋아하고 자주 들었다.


  노래가 속한 앨범 이름은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그렇다. 우리가 익히 아는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 '장발장'이 나온 소설에서 이름을 따왔다.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어로서 뜻은 '불쌍한 사람들'. 루시드 폴은 '단 한 명도 행복한 사람이 없어 보였던 동명의 소설처럼, 이 서글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불쌍한 사람들일 수 있다'며 앨범 명을 지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멜로디가 좋아서 듣기 시작했다. 루시드 폴 노래 중에서는 그나마 격정적(?)인 편인데, 항상 잔잔하게 부르는 그도 이 노래에서는 약간의 비장한 감정을 담아 부른다. 그다음에는 가사를 주의 깊게 들었는데, 어떤 한 사람의 유언처럼 들린다('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그렇다면 이 화자話者는 왜 죽는 걸까. 그 부분도 가사에 나온다. '어둠을 죽이던 불빛. 자꾸만 나를 오르게 했네', '조금만 더 살고 싶어 올라갔던 길. 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라고. 조금만 더 살려고 올라갔던 길에서, 어둠을 죽이던 불빛에 사라지는 그 사람. 불빛에 쫓겨 올라가서 죽은 사람. 철거민 여섯과 경찰 한 명이 죽은 '용산 참사' 이야기다.


  재개발 보상문제로 인한 갈등으로 끝까지 저항하던 철거민들과 이를 강경 진압하려던 경찰이 빚은 참사. 노래 감상평에서 시사 이슈를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루시드 폴이 이 노래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들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회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비참하게 살다 죽은 사람들.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시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특별한 잘못을 했다거나 특별히 모가 나서 그런 참사를 겪은 게 아니라는 것이므로, 우리들 중 누구나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그러니 평범한 사람끼리 돕고 연대하자는 것. 그것이 이 노래의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역시나 루시드폴이 작사, 작곡, 편곡했다.


  이 노래가 화제가 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바로 故 노무현 대통령이 오랜 벗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에게 하는 말 같다는 것. '나는 갈 곳이 없었네. 그래서 오르고 또 올랐네.',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주게.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故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뒤에, 또 로스쿨에서 공부했던 3년 동안, 이 노래를 매일같이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인데, 나중에 나의 장례식에서 BGM으로 노래를 틀 수 있다면 이 노래가 좋겠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중, 평범하게 죽어간 1인으로서 말이다.



3위. 밤편지, 아이유 ('17. 3. 24)


  .... 이번엔 진짜 마지막 아이유다. 아이유 노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첫 번째 이유는 자기 전에 듣기에 참 좋다는 것이다. "이밤..." 첫마디만 들어도 '이 노래 좋다!'는 생각이 들고 계속 듣다 보면 마음이 노곤해지면서 잠이 온다. 두 번째 이유는 역시나 가사다. 작곡, 편곡은 김제휘와 김희원이 공동으로 했지만, 작사는 아이유가 단독으로 했다. -뮤직비디오도 그렇지만- 어쩐지 낡고 오래된 손편지를 생각나게 하는 노랫말이다. 우리말, 그것도 자주 쓰이는 단어로만 쓰인 가사가 제법 서정적이고 소담스럽다. 반주도 피아노와 클래식 기타가 주로 나오는데, 단순한 구성에 기교를 배제해서 자꾸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가만 들어보니 가사 자체도 청자를 재우는 내용이다. '이밤 그날의 반딧불을 당신의 창 가까이 띄울게요. 좋은 꿈이길 바라요.'


  아이유는 항상 나이보다 먼저 성숙한 가수였다. 데뷔 초창기부터 유독 선배 가수들과 많이 어울리더니, 아예 리메이크 앨범까지(꽃갈피, 2014) 내버렸다. 서울 구도심의 익선동, 을지로 3가가 50~60대가 많이 찾던 공간에서 10~20대가 많이 찾는 공간으로 몇 세대를 건너뛴 것처럼, 20대의 아이유는 특이하게도 60대의 김창완, 양희은과 함께 작업을 한다. 현재의 레트로, 복고풍 유행을 주도하는(혹은 함께하는) 그녀는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솔로 가수다. 그런데도 아직 25살이다.


  기획사가 만든 아이돌에 안주하지 않고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자질을 갈고닦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필자는 연기하는 아이유보다 노래하는 아이유를 더 좋아하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음악적으로도 성숙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살면서 항상 발전만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의 모습이 기대되는 건 사실이다.



2위. 명왕성, 루시드 폴 ('15.12.15)


  대망의 2위. 루시드 폴이다. 그의 정규 7집 음반, "누군가를 위한, "의 세 번째 수록곡이다. 2위에 선정된 이유는 간단하다. 살면서 가장 잠이 오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루시드 폴의 이 앨범이 나를 재워주었는데, 80%는 세 번째 트랙의 이 노래를 끝으로 잠이 들었다. 잠이 안 오는 누구든 실험해보라. 누워서 앨범을 첫곡부터 플레이해놓고 가만히 듣다 보면, 90% 이상의 사람들은 다섯 곡을 채 듣지 못하고 잠에 빠질 것이다. 그게 루시드 폴 노래의 마력(?)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명왕성은 2006년 "태양계 행성"의 지위에서 퇴출되었다. 과거에도 태양계 행성 중 가장 끝에 있었는데, 이제는 아예 "행성"의 지위에서 배제된 것이다. 이토록 멀고 소외되고 대접받지 못한 행성, 그것을 주인공으로 한 가사다. 루시드 폴은 소외된 사람, 소외된 생명에서 더 확장하여, 이젠 소외된 천체까지 보듬는다. 그의 조곤조곤한 창법으로 명왕성이 새롭게 보인다. 명왕성처럼 소외되어 있지만 따뜻한 애정과 관심을 원하는 사람/생명이 생각나는 노랫말이다. "그 누구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 밤. 가장 멀리 있어도, 가장 빛나고 싶던, 이 조그만 몸은 갈 곳이 없으니, 난 다시 홀로 허공에 남아버렸어."



1위. 아직, 있다. 루시드 폴 ('15.12.15)


  1위. 하지만 벌써 네 번째 나오는 루시드 폴이다 보니 새로움이 없어 아쉽다. 하지만 AI는 냉정한 법. 사실대로 순위를 기재할 수밖에. 분명 2위 '명왕성'과 같은 앨범인데, 앨범을 통째로 들었다면서 왜 이 노래는 1위일까. 답은 간단하다. 이 노래는 자기 전뿐만 아니라 낮에도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노랫말 때문이다.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축 처진 어깨를 하고 교실에 있을까. (중략) 꽃들이 피던 날. 난 지고 있었지만, 꽃은 지고 사라져도 나는 아직 있어." 꽃이 피던 날 진 학생들, 세월호 침몰 사고('14.4.16)를 두고 쓴 가사다.


  이 앨범이 나오자마자 멜론에서 듣기 시작했는데, 처음 이 노래를 들을 때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세월호 참사 후 8개월여가 지난 시점, 이제 조금 잊었나 했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서 울컥했었다. 노래는 어떻게든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힘이 있다. 이 앨범 전체가 그렇지만, 이 노래도 필요 최소한 악기만을 연주하면서, 최대한 노랫말에 집중하는 편곡이 가사에 더욱 힘을 실어 주었다. 이토록 잔잔한 노래에 호불호가 있을 것이지만 적어도, 들으면 들을수록 노래가 좋아진다고 말해주고 싶다.


  벌써 세월호 참사로부터 5년이 지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했고, 정권도 바뀌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부터 얼마나 나아갔는지는 잘 모르겠다. 한 번에 다 바뀌진 못하더라도 지치지 않고 계속 바뀌어 나갔으면 한다. 하지만 세상이 어떻게 좋아지든 간에,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슬픔은 슬픔으로 남는다. 이미 떠나간 생명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이 노래를 들으며 다시 슬퍼할 뿐이다. 그럼에도 노래는 마지막에 덧붙인다. "다시 봄이 오기 전 약속 하나만 해주겠니.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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