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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Feb 01. 2021

슬픈 CCTV

2021. 2. 1. 일기.

 아이를 본가에 맡기고, 본가에 CCTV를 달았다. 보통 '홈캠'이라고 하는데, 아이나 반려동물이 있는 집에서 일 나간 부모들이 집 한편에 설치해 두고 보는 것을 말한다. 우리 부부와 부모님이 모두 일을 하시는 관계로 일주일에 세 번씩 베이비 시터 선생님에게 아이를 맡기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안심이 되지 않아 홈캠을 설치했다. (물론 시터 선생님의 동의를 받았다)


  야근이 많아 본가에 자주 가지 못하니, 홈캠으로나마 아이를 자주 봐야지 했다. 주말에 본가에 가서 거실 한쪽 높은 곳에 홈캠을 설치해놓고 보니, 평소 뉴스에서 보는 CCTV처럼 거실이 한 화면에 들어온다. 이제 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내심 흐뭇했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 생겼다. 출근하는 길에, 출근해서, 시간 날 때마다 잠깐씩 어플을 켜고 아이가 잘 있는지 관찰했다. 아이는 잘 있었다. 시터 선생님이 잘 봐주었고, 퇴근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잘 봐주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영상을 오래 보기 힘들었다. 알 수 없이 안쓰럽고, 미안하고, 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그 영상에서 나는 완벽한 제삼자이고, 관찰자이고,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헛것'과도 같은 존재였다. 만약 영혼이 있다면, 죽어서 영혼이 된다면 이런 기분으로 살아있는 가족들을 볼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제삼자처럼 지켜볼 것이 아니라 가서 육아를 도와주어야 하는데, 하는 죄스러움과 무력함. 아이를 어루만지지 못하고 멀찍이 지켜보아야 하는 미안함. 아직 7개월밖에 되지 않은 작은 아이가 스마트폰 화면에서는 더욱 작아진 채로 앉아있는 걸 보니 밀려드는 안쓰러움. 귀여운 내 아이를 만지고 싶은데 만지지 못하는 안타까움까지 밀려왔다.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려면 집이 필요하고, 널뛰는 집값을 잡으려면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아야 한다. 대출금을 갚으려면 부부가 모두 출근해야 한다. 부부가 모두 출근하면 누군가가 대신 아이를 봐주어야 한다. 아이를 대신 봐주는 값을 치르면서 대출금을 빨리 갚으려면 야근을 해야 하는데, 야근이 잦다면 아이를 보기 힘들다. 결국 아이를 위한다는 것이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하게 만든다. 가장의 역할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아이를 보지 못한다니, 그 역설이 견디기 힘들었다. 아주 옛날부터, 어쩌면 태고적부터 있었을 역설인데, 여태 해결되지 못한 것을 보니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이것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역설이고, 사는 동안 해소할 수 없는 죄책감으로 보인다.


  홈캠을 보고 있으면 복잡한 생각들이 스친다. 어딘지 안쓰럽고 괴로워 30초 이상 아이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이내 어플을 닫고, 다시 일에 집중한다. 화가 이중섭이 쓴 편지들이 생각났다. 일본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생각하며 그림을 그린다는, 그리고 또 그렸던, 하지만 끝내 그림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끝내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한국에서 죽었던, 이중섭이 생각났다. 아이가 보고 싶어 어플을 켜지만, 이내 1분도 보지 못하고 다시 어플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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