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중 Feb 07. 2022

봉준호가 '거장'이라고 한 이유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2021)' 감상평.

  봉준호는 이 영화를 극찬했는데, 요약하면 '이미 거장의 영역에 들어간 감독이 다시 한번 거장임을 증명한 영화'라는 것이었다. 국내외 평론가들도 칭찬 일색이니,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코로나19 임에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Drive My Car, 2021)이다.


  우선 이 영화의 처음과, 영화 상영시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영화 상영시간은 무려 3시간이다. 3시간이나 되는 상업영화를 언제 보았던가,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반지의 제왕 시리즈(2001~2003)가 마지막이다. 반지의 제왕은 기본적으로 대서사시 영화가 아닌가. '가후쿠'라는 중년의 연극배우, 연출가가 주인공인 드라마 영화가 3시간이나 될 이유가 있을까.

영화의 주인공 가후쿠는 니시지마 히데토시가 맡았다. 나이가 먹을수록 인기가 늘고 있다.

  영화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시작은 매우 낯설고 이상하다. 어스름한 새벽 즈음, 창백한 하늘을 등지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이 혼잣말을 시작한다. 읊조리는 이야기는 '같은 반 남자아이의 집에 몰래 침입하는 여고생' 이야기다. 한 문장으로 요약해도 이상한데, 여인이 상세히 묘사하는 상황은 더욱 괴이하다.


  그녀는 가후쿠의 아내 오토(音). 가후쿠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4살 때 폐렴으로 죽고, 부부 사이에는 지워지지 않을 상처와 균열이 남았다. 그 균열을 매우지 못하고 오토는 외도를 벌이고, 우연히 이를 본 가후쿠는 끝내 모른 척하고 부부의 연을 이어가려 한다. 왜 바람을 피웠는지 묻지도 어떠한 설명을 듣지도 못한 채 아내 오토는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는 크게 3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 가후쿠와 오토의 과거, 2) 가후쿠가 연출하는 연극 '바냐 이야기', 3) 가후쿠가 연극을 연출하며 벌어지는 개인 운전사 미사키와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세 가지 이야기는 씨실과 날실처럼 영화 곳곳에서 겹치는데, 전혀 다른 시간대의 이야기가 하나의 영화로 매끄럽게 연결된다. 전적으로 감독의 대단한 연출 솜씨라고 하겠는데, 가히 천의무봉(天衣無縫)이다.

가후쿠는 히로시마 연극제에서 연극 '바냐 이야기'의 연출을 맡았다.

  다층적인 이야기 구조와 이를 엮은 짜임새도 좋지만, 디테일한 설정도 견고하다. 가후쿠가 15 넘게 몰고 있는,  영화의 중심 소재인 자동차 "사브 900" 스웨덴의 자동차 업체인 사브(SAAB) 사에서 1987 제작된 차량이다. 내구성과 성능 좋기로 유명한 차량이자 우핸들인 일본에서 운전에 불편하기 짝이 없게 좌핸들 차량이고, 어디서나 눈에 띄는 빨간색 차량이다. 오래된 차인데, 심지어 사브는 이미 망해서 없어진 회사다. 이제 그의 성격을 짐작할  있다. 그는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제법 준수한 안목이 있으며, 한번 마음에  물건은 끝까지 간직하고,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자다.

가후쿠가 모는 사브 900. 오래됐지만 애지중지 몰아온 흔적이 보이는 차다.

  화면 하나하나의 완성도와 구성, 한마디로 '미장센'도 좋다. 영화는 자동차에 탄 인물을 찍은 장면이 많은데, 가후쿠의 얼굴을 잡을 때,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의 그림자를 다르게 쓴다. 다르게 비치는 빛은 가후쿠의 복잡한 내면, 특히 두 가지 얼굴을 모두 보여준다. 영화의 후반부, 죽은 아내와 바람을 핀 남자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절반은 분노(바람피운 남자에 대한), 절반은 죄책감(죽은 아내에 대한)이었으며, 이처럼 치밀하게 짜인 장면이 여럿 보인다.

이 영화는 자동차에 타서 대화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3시간은 집중력을 잃어버리기 좋은 시간이다. 그런데도 영화는 때로는 조바심 나게, 때로는 잔잔하지만 긴장감 있게, 때로는 편안하게, 때로는 슬프고 감동적인 시간을 자아낸다. 슬픔은 영화의 절정에서 잠깐 비치며, 대체적으로 절제된 슬픔이 영화 안쪽에 깔려서 단단하고 공감 가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죽은 오토가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를 출근길에 듣는 가후쿠. 그 목소리는 '바냐 이야기'의 대사들이다. 이 대사들은 가후쿠에게 말을 걸기도, 그를 도발하기도, 때로는 관객들에게 현재 상황을 설명하기까지 한다. 전혀 관계없던 과거와 현재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 절묘한 대사의 배치에 놀라고, "거장"이라고 불리는 감독의 연출력에 놀란다.


  가후쿠와 미사키는 녹음된 카세트테이프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때문에 괴로워하는 공통점을 가지는데, 그 어두운 터널을 끝내는 게 영화의 주요한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과거도, 고통도, 고통스러운 과거도 있는 만큼 누구나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이야기다.


  영화의 말미에 와서야,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3가지 이야기는 하나로 합쳐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이야기와 이야기가 대화하고 공명하면서, 마침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관객은 이 이야기의 끝을 가지고 집에 돌아간다. 영화는 말하는 듯하다. 각자의 차를 타고 돌아가서, 이제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