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쓰고 보면 좋은 영화

영화, 탑건:매버릭(Top Gun: Maverick, 2021) 감상평

by 김우중

감상평을 길게 쓸 영화는 아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훌륭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이 영화의 미덕이 복잡하지 않다는 의미다. 몇 가지 단어로도 이 영화의 장점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톰 크루즈, 1986년, 전투기, 2022년, 그리고 톰 크루즈. 1986년부터 2022년까지, 무려 36년 만의 후속작이지만 오히려 그것이 톰 크루즈의 연기 인생 40년을 관통하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이 이 영화는 영화 자체로만 볼 수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 미첼은 톰 크루즈로 보이며,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영화의 안과 밖을 넘나든다. 그가 보이는 전투기 액션 씬은 톰 크루즈 연기 인생에서 그가 보여주었던 수많은 스턴트 액션 씬의 일부 또는 화룡점정으로 보인다. 사실 영화의 진짜 재미는 전투기 액션 씬인데, 이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직접 보아야 안다.


마블 영화가 휩쓸고 간 자리에 이 영화가 우뚝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마블 시리즈가 보여주었던 화려한 CG와 특수효과에 지친 관객들에게, 과거의 영광이지만 그 과거가 여전히 유효한 것임을 보여주는 '아날로그'식 액션은 오히려 신선했다. 필자는 80년대생으로, 1986년작 탑건을 본 적이 없다. 따라서 그 옛날 탑건의 센세이셔널한 인기를 모른다. 그러나 모르고 보아도 재미있을 정도로, 옛 방식으로 요즘 관객을 충분히 만족시킨다. 아날로그의 힘이라고 할 것까지도 없고, 있는 그대로 보여지는 물체의 존재감, 그 화면이 주는 힘이랄까. 과거의 무엇이 요즘 더 신선해 보인다는 점에서 탑건:매버릭은 요즘의 뉴트로 열풍과도 닮았다.


영화를 보다보면 오토바이에 관심이 없어도 타고 싶어진다.


보고 나면 과거 유행한 '애국주의' 영화라기보다 '직업의식'을 다룬 영화처럼 보인다. 일단 미 해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이유를 알겠다. 보고 나면 (미국인이 아님에도) 미국 국뽕이 차오른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이런 영화를 제작한 미국이란 나라 자체의 강대함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탑건:매버릭은 군인이 주요 인물인 영화임에도, 적국敵國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우라늄을 불법적으로 적재해 두고 있는 어떤 나라라고 할 뿐, 그 나라의 사악함이나, 그 나라의 특정 인물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불가능한 작전을 가능케 하려는 해군 엘리트 파일럿들의 이야기를 보여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직업의식' 또는 '직업윤리'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누가 보아도 누구나 감동받을 수 있게 짜여졌다.


고백한다. 이 영화가 시작하고 5초 만에 눈이 돌아가 버렸음을. 필자를 감동하게 만든 것은 인트로 장면이다. 황금빛 노을을 바탕으로 전투기가 뜨고 내리는 항공모함 갑판을 담은 그 영상. 분주히 움직이는 갑판 위 사람들과 신호수들, 비행기를 정비하고 점검하고 이륙과 착륙을 돕는 무명의 사람들이 나를 감동시켰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인트로 장면은 탑건 1과 거의 비슷하게 연출되었는데, 클래식은 굳이 바꿀 필요가 없음이다. 같은 방식으로 촬영했음에도, 이렇게 신세대인(?) 필자를 감동시키지 않았는가.


이 영화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지만, 톰 크루즈만 알고 가면 된다.


사회생활 7년 차가 되니, 인트로 장면이 다르게 보인다. 가끔씩 내가 하는 일이 하찮아 보일 때, 별다른 성과로 나타나지 않을 때, 초라함에 자책할 때, 이 인트로 장면을 다시 꺼내어 볼 것이다.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전투기가 뜨고 내린다. 그 조종사는 충분히 멋지고 빛나고 주목받을 가치 있는 자들이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조종사를 돕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도 충분히 아름다우며 내가 그들 중 일원이라는 것을.


필자는 영화를 보는 동안 쉬지 않고, 같이 보러 간 아내를 향해 (인트로 장면의 신호수들이 그랬듯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영화 상영 중이라서 조용히 내 감동을 전하고 싶기도 하고, 마스크를 썼기도 했고, 영화 속 조종사와 신호수들을 따라 하고 싶기도 해서. 그러고 보니 (보건용) 마스크를 쓴 내 모습이 (조종사용) 산소마스크를 쓴 톰 크루즈 같았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그랬다. 이 영화가 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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