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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Aug 18. 2022

영화를 보고 나면 어딘가 붕괴된다.

영화,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 2021)

  이 영화 리뷰에 앞서 두 가지를 고백해야겠다. 부끄럽지만, 나름 '영화팬(시네필 까지는 아닌)'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필자는 이 영화를 집에서 iptv로 보았다. 박찬욱이라는 거장의 영화는 모름지기 극장에서 보아야 했건만, 육아와 야근으로 도저히 극장에서 볼 시간이 나질 않았다. 두 번째로, 필자는 박찬욱의 광狂팬은 아니다. 박찬욱의 장편영화 10편 중 5편을 겨우 보았을 뿐이다. 다만 박찬욱의 몇몇 영화는 참 좋아하고, 그가 거장으로 불려도 손색없는 감독이라는 점은 당연히 인정한다.


 그러므로, 집 거실에서 와인 한 병을 까놓고 아내와 방만하게 앉아, 과자를 집어먹고 술을 홀짝거리며 별 기대 없이 이 영화를 보기 시작하였음을 고백한다. 처음에는 박찬욱답게 참 미장센이 좋고, 세련된 연출을 자랑하는구나, 박해일이 생각보다 참 미중년이구나, 탕웨이는 역시 이쁘구나, 이 정도였다.


 영화의 1부. 스마트폰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앉은 그들에게서 햇빛이 비추었다가, 다시 멀어지자 햇빛은 어느새 사라진다. 박찬욱의 장난스러운 연출로 느껴졌다.


  그런데 영화의 중반, 박해일이 탕웨이 앞에서 독백하듯 중얼거리는 대사에서 뭔가 심상찮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라는 대사는 말 그대로 뇌리에 박혀버렸다. 글자로 옮기면 지나치게 문어투적이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이 대사를 박해일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읊었다. 그가 연기한 형사 해준의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해냈다. 직업적 자부심을 푯대 삼아 살아가던 그가 그 직업적 자부심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사랑을 만난 순간, 하지만 그 푯대 때문에 사랑을 사랑할 수도 없는 처절한 모습을 그는 저 대사로 모두 표현해냈다.

(나중에 찾아보니 이 영화는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었고, 위 장면은 1부의 마지막이었다)


  2부의 시작과 함께 이 영화에 흠뻑 빠져들기 시작하였음을 고백한다. 1부는 다소 상투적인 이야기와 뻔한 구도 "처럼"보이게 만들어져 있어, 제대로 빠져들지 못했다. 박찬욱 식의 장르 비틀기에 불과한 건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를 비웃듯 2부는 예상하지 못할 내용들로 정신이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빠르게 휘몰아치던 이야기는 결국 끝으로 내달리는데, 영화의 마지막에서 이 영화에 관한 선입견, 박찬욱에 관한 선입견이 말 그대로 '붕괴'되었다.

박해일과 박찬욱은 궁합이 참 좋다. 박해일은 앞으로 로맨스 영화 좀 자주 찍어주었으면 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설명은 피하겠다. 이것은 직접 보아야 한다. 다만 마지막 장면을 볼 때의 관객은 여실히 주인공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눈물은 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 아프고 안타깝다. 슬픔은 날카롭게 파고들어서 움직일 때마다 찌르는 가시처럼 남는다. 영화를 본 지 3일이 지났건만 계속해서 영화평과 박찬욱 감독, 정서경 각본가의 인터뷰를 찾아다니고 있음을 고백한다.


  감독은 칸 영화제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형사 영화이자 멜로 영화이며, 둘 중 어느 하나도 덜 중요하거나 더 중요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박찬욱은 정확히 자기 의도대로 영화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다. 이 영화에서 흠잡을 곳이 없다. 미술, 음악, 색감, 사운드 믹싱, 촬영 등이 모두 하나같이 뛰어나다. 이것이 한국 영화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울 정도다.


  형사 영화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박해일과 탕웨이는 형사와 피의자(범죄자로 의심받는 사람)이지만, 핵심은 '의심'이며, 그 의심은 '서로의 마음'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또한 박해일은 형사로서 직업윤리를 중시하고 직업적 자부심과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이기에, 이 영화가 가능해진다. 직업윤리와 자부심이 이 영화에서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주요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또 동시에, 직업윤리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직업윤리는 서구식 자본주의, 더 나아가서는 개신교, 프로테스탄트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나, 현대 한국사회에서 종교를 믿지 않는 대다수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도덕적 가치관으로 기능하는 것이 직업윤리가 아닌가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단순히 '불륜'을 다룬 영화를 넘어서서, '직업윤리'와 '사랑'의 충돌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이채롭고, 생각할 부분이 많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멜로/로맨스 영화임을 짚고 넘어가려 한다. 박해일과 탕웨이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이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으리라. 하지만 가장 감명받은 것은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감독 스스로가 생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정말 "끝까지" 밀고 나갔다는 것이다. 사랑에 관해서 탐구하고 정의하는 영화는 수도 없이 많지만, 이 영화는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감독은 사랑에 대하여,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좌고우면 하지 않고 에둘러 가지도 피해가지도 않고 정면으로 돌파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고 그것이 관객의 마음에 파고든다.

순천 송광사에서 찍은 장면이라고.

  그런 면에서 제목은 참으로 적절하다. 헤어질 결심. 헤어진 것은 아니고 헤어질 결심을 하였다는 것이며, 마음속으로만 결심을 하였을 뿐 헤어질 말을 꺼내지 못한 상태. 그러므로 아직 사귀고 있는 상태. 하지만 헤어지자고 말을 할지 말지는 알 수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이 영화에 참으로 어울린다. 우리는 보통 실행에 옮기기 힘든 일을 '결심'한다. 밥 먹기를 결심하지 않고, 손 씻기를 결심하지 않는다. 아침에 출근하기를 결심하고, 오래 다닌 직장을 퇴직하기를 결심한다. 그러므로, 헤어질 결심이란 '영원한 사랑' 또는 '서로 헤어지기 싫은 연인들'과 동의어로 들린다.


  아마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면, 필자는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 뒤에도 한동안 극장을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스크린에  주인공을 차마 남겨두고 오지 못해서, 그들을 그렇게 두고  수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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