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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Aug 10. 2022

반지하 원룸

2015. 1. 10. 에 쓴 글

그들은 1987년 11월 신림동의 어느 반지하 단칸방에 신혼집을 꾸렸다. 부엌은 방 밖에 있었고, 세간은 서랍장 하나와 이불이 다였다. 부부 모두 고향은 서울 밖에 있었고, 서울에 연고도 없었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은 건강한 몸뚱이뿐이었다. 반지하 쪽방도 고향의 형제들이 돈을 빌려주어 가능했다. 아내는 먹는 게 시원찮아 임신이 힘들었다. 그러다 이듬해 2월 아들을 하나 낳았다. 더 낳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2014년 12월에 나는 기숙사를 떠나 학교 앞 원룸으로 이사 왔다. 집에서 보내주는 밥을 먹고, 혼자서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집을 둘러보던 중, 싸고 좋은 집이 있었는데 단 하나 흠이 있다면 반지하라는 것이었다. 딱히 반지하에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부모에게 손 벌리고 사는 학생에게 어울리는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도 반지하가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다며 좋다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님이 찾아와 반찬을 갖다 준다. 아버지는 청소를 해주고, 어머니는 밥을 해준다. 작은 밥상에 밥그릇을 맞대고 셋이서 밥을 먹는다. 3명뿐인 가족이 각기 바빠 다 같이 밥 먹기 힘든데, 아버지는 온 가족이 모였다고 좋아한다. 이 좁은 방에 부모님이 오니 본가本家와 다르지 않았다.


그들 부부는 이 작은 반지하 방에서 87년을 추억한다. 나보다 더 이 방을 좋아하는 것 같다. 태어나기도 전인 나에게는 아득한 일이다. 하지만 27년이 지난 그들이 모습을 보니, 27년 전에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ps. 신림동 반지하 사망사고 이후, 과거 2015년에  글이 생각나 가져온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임신할 적 신림동 반지하에서 살았고, 그 때문에 내 본적도 신림동이다. 나는 그것을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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