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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Oct 11. 2022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27개월 차 아이 육아일기

  이제 막 27개월이 넘은 아이는, 한 달 전부터 이상한 행동을 한다. 어른(양육자)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막는다 싶으면 으레 싫은 티를 내며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리는 것이다. 그게 방바닥이면 그나마 나은데, 밖에서도 드러눕는다. 흙바닥이든, 보도블록이든, 쇼핑몰이든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는 바닥이 축축한 공공 화장실에서도 드러누우려 하기에 기겁하며 아이를 들어 올린 적도 있다.


  아이도 아는 것이다. 자기가 드러누우면 자기를 들어 올릴 만한 완력을 가진 사람이 아빠 정도밖에 없다는 것을. 어떨 때는 웃으면서 드러눕기까지 한다. 아이는 그만큼 지능이 발달하고, 약아졌다.


  며칠 전 연휴에, 아내의 중학교 동창 부부와 만났다. 그 집 아이는 29개월, 2개월 정도 빠른 여자 아이였다. 27개월 남자아이인 우리 아이보다 말이 훨씬 빨랐는데, 또래 여자아이보다도 빨랐다. 웬만한 표현은 다 하고, '~가 하고 싶어.'라는 표현까지 할 정도였다. 단어 정도만 몇마디 하는 우리 아이를 보다가 그 집 아이를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고등생물'이란 저렇구나 싶을 정도.


  다행히 두 아이는 잘 놀았다. 시내의 어느 카페였는데, 실내 공간이 넓어서 계단을 올라가기도 하고 비탈길의 난간을 잡기도 하며 두 아이는 잘 어울렸다. 여자아이는 노래도 잘 불렀다. 마침 우리 아이는 춤을 잘 추어서, 그것도 어울렸다. 우리 아이도 그 집 여자애가 마음에 드는 듯했고, 여자애도 이따금씩 우리 아이를 안아주었다.


 몇십 분 같이 놀았을까,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우리 아이가 갑자기 그 여자애 앞에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는 것이다. 예의 그 드러눕는 동작을 그 여자애 앞에서 선보이면서, 그 여자애를 힐끔 보았다. 마치 관심을 바라는 듯이. 자기를 일으켜달라는 듯이. 말은 못 하고 관심은 받고 싶고 하니 아이는 계속 그 여자애 앞에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말 잘하는 여자애는 '그러면 안돼~' 혹은 '아파~'하면서 우리 아이를 안아주거나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기를 열 번은 반복했다. 아이는 우리가 말려도 듣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그리고 우리 부부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다른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처음 (눈앞에서) 보아서 그런 것일까. 혹은 아이가 부모나 조부모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것을 처음 보아서일까. 우리 아이가 남자고 저 아이가 여자 아이라서 달라 보이는 것일까. 하릴없이 이것이 어느 남녀의 첫 만남 또는 연애의 시작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 모습을 목격(?)한 김에, 아이에게 말하고 싶다.


  아이야. 앞으로도 너는 누군가를 사랑할 것이고 그의 애정과 관심을 갈구할 것이다. 네가 갈구하는 방식이 너 자신을 몰아세우거나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랑받고 싶겠지. 그러나 너의 사랑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고 이뤄지더라도 금세 배신당할 것이다. 상처받고 슬퍼하겠지. 사람을 믿을 수 없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겠다 다짐할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그렇게 서로를 만났다. 상처받은 채로 만나 마침내 사랑하고 결혼해서 너를 낳았다.


 덧붙이자면, 내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나는 아동심리학자도 육아 전문가도 아니다. 그저 27개월이  아이의 행동이 처음 보는 것이어서 놀라웠고 그에 기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일 뿐이다. 다만 시간의 문제일  아이도 커서 또래와 사랑을  것이니까. 사랑은 인간의 본능  하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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