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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Dec 25. 2016

여기 사람이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cke, 2016) 감상평

"나는 요구합니다. 당신이 나를 존중해 주기를. 나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中


(스포일러 없음)


 켄 로치 감독의 2016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는 요즘 시국에서 꼭 한번 볼만한 영화다.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지 올해 50년이 된 이 80대 감독은, 거장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은 솜씨를 보여준다. 

 켄 로치를 간단히 말하면, 좌파 성향의, 사회문제(주로 자신이 사는 영국의)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데뷔 50년 차 감독이 되겠다.

 이 영화도 켄 로치의 작품답게 사회 제도, 그중에서도 복지 제도를 다룬다. 대학 시절 한 교수님이 '시스템을 말하면 진보, 인물을 말하면 보수'라는 이분법을 알려주었는데, 그에 따른다고 해도 이 영화는 매우 진보적인 주제를 다룬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인간 존엄성'이지만, 현실적으로 말하면 '가난한 사람도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있다' 정도가 되겠다. 나름 인권에 관심이 있다고 자부해 왔으나 인간 존엄성이 무엇인지 누구에게 설명하려면 아득한데, 이 영화 하나로 그 설명이 가능할 듯싶다.

 먼저 이 영화의 형식적인 완성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북유럽식 가구를 연상케 하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으되 그 단순함이 아름다울 정도의 영화다. 본연의 기능만을 위해 군더더기를 모두 없앴지만 오히려 그것이 미적으로 아름다우면서 질리지 않는 북유럽식 가구와도 같다. 한 장면 한 장면이 하나의 주제를 향해서 기능하지만, 그 자체로 영화는 재미있으면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영화는 어떠한 감정과잉도 없이 관객을 눈물짓게 만들고, 때로는 기쁘고, 대부분은 답답하게 만든다.

 이러한 영화적 형식으로 얻은 효과는 매우 간단하다.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가 답답해하는 만큼 우리는 답답하다. '암 걸릴 거 같다'는 시쳇말이 매우 적절하다. 주인공이 앓고 있는 심장마비 증상을 관객에게 체험시키기 위한 영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

 이 영화를 보는 동안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허트 로커(The Hurt Locker , 2008)'가 생각났다. 허트 로커의 위대성 중 하나는 관객이 전쟁터에 있는 것 같이 긴장되고 불안한 느낌을 준다는 점인데, '나, 다니엘 블레이크'도 관객이 주인공과 같은 처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카데미 7개 부문을 수상한 그래비티(Gravity, 2013)에 비견될 정도로 생생한 '체험'이다. 영화 속 인물들이 비참해하는 만큼 우리는 비참하고, 그들이 슬픈 만큼 슬프다. 

 이처럼 생생한 답답함과 비참함, 슬픔을 왜 관객에게 주는가. 이러한 고통을 왜 관객에게 전달하는가. 영화는 간결하게, 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이 영화의 주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 존엄성, 사람의 자존심 문제다.

 요즘 시국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2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춥고 붐비는 광장에 나온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달콤한 인생(2005) 속 명대사처럼, 우리는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우리가 쌓아온 사회적 제도와 개인적 경력이 모두 무너지는 것 같이 커다란 모욕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와 또 다른 국가 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한다. 인간을 위한 복지, 인간을 위한 국가제도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예술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영화 그 자체로서, 50년 넘게 영화를 만든 거장의 솜씨가 무엇인지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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