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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Mar 05. 2016

세상에 나쁜 보호자만이 있다.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최근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EBS)'라는 프로그램에 빠져있다.
지금까지 15주 분량은 챙겨본 거 같다. 웬만한 멜로 영화보다 감동적이고, 웬만한 자기계발서보다 유익하다.


 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개들은 소위 '문제견犬' 들이다. 주인을 피가 나도록 무는 개, 오줌을 아무 데나 싸는 개, 손님만 오면 미친 듯이 짖는 개 등등... 견종이 다른 것은 물론, 주인(여기서는 보호자라고 부르더라)들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놀라운 공통점이 있는데,
1) 자기 개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보호자들이고, 2) 자기 보호자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개들이라는 것.


 1번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자기 개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방송사에 신청해서 여러 쪽팔림(?)을 무릅쓰고 방송 출연을 결심한다는 것은 키우는 개에 대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2번은 매우 놀라웠다. 모든 문제견들이 자기 보호자를 사랑한다는 사실이. 그렇다면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도 서로 힘들어한다. 왜일까?


 프로그램 시청 결과, 근본적인 이유는 의사소통 방식의 차이였다. 손님만 오면 미친 듯이 짖는 개가 있다. 짖는 것은 두려움의 표시다. 낯선 이가 두려워 짖으면, 보호자는 짜증이 나서 소리친다. '조용히 해!'. 그래도 짖자, 개를 야단친다. 그러면 개는 어떻게 생각할까? 주인을 미워하기는커녕, 집에 찾아온 손님 때문에 주인이 화낸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주인에게 탓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니 찾아오는 손님을 더 두려워하고, 더 시끄럽게 짖는다. 악순환이다.


 강형욱 훈련사(이 프로를 보면 이 남자를 존경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아주 간단한 방법을 제시한다. 손님과 개 사이를 가로막아 서고, 하품을 하라고. 
인간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지만, 개는 코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고 한다. 개에게 어떤 의사를 전달하고 싶으면, 말하지 말고(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리 없다), 몸짓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하품을 하면 주인이 편안하다는 뜻이고, 개는 자기 주인이 편안함을 보고서야 안심한다고 한다.


 주인을 무는 개도 이유가 있었다. 주인은 개가 이뻐서 계속 만지고, 잡아당긴다. 개에게 그것은 불쾌할 수 있다. 개는 좋아하는 이를 스쳐 지나가고, 기대는 습성이 있다. 사람과 달리 대상을 안거나 당기지 않는다. 주인이 개를 만지고 꼬리를 당기자, 개는 으르렁거린다. 싫다는 의사표시다. 그런데도 개를 사랑하는 주인이 계속 만지자 마침내 주인의 손을 문다. 개 입장에서는 충분히 많은 경고를 보낸 것이다. 싫으니 그만하라고.


 서로를 사랑하는 이들이 싸우고 상처 입고, 심지어 피까지 흘린다. 이것이 개와 사람 사이의 일로만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에게 내 입장에서 기분 좋은 일을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의사표시를 해놓고 상대방이 알아듣기를 바라지는 않았는지. 


 사람들은 문제견을 버릴 생각도 하고, 안락사시킬 생각도 한다. 실제로 많은 개들이 버려진다. 하지만 개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한 시바견은 주인이 보낸 훈련소에서 얼굴 절반의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훈련소는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럼에도 개는 주인을 탓하지 않는다. 이렇게 아픈데도 자신을 버리지 않은 주인에게 미안해한다. 그것이 개다. (출처 : http://tvcast.naver.com/v/725181)


 오늘도 개에게, 강형욱 훈련사에게 많이 배운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프로그램명은 또 하나의 문장을 숨기고 있다. '세상에 나쁜 인간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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