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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Mar 24. 2016

시간을 느리게 걷는 곳

검도장과 공립 도서관에 대하여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모르더라도, 공간에 따라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것을 믿는다. 며칠 전, 검도劍道를 배워보려고 찾은 도장이 그러했다. 
 옆에는 편의점이, 위에는 노래방이 있는 건물의 지하. 네온사인으로 정신 사나운 술집 골목 초입에 자리 잡았다. 이런 곳에 검도장이 있다는 게 어색했는데, 계단을 내려가자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온 것처럼 생경했다. 빛이 바래기 시작한 옛날 사진에는 20대 도장 사람들이 가득한데, 지금은 내가 유일한 20대다. 모두 중, 고등학생 아니면 30,40대라고.
 도장에 들어서면 일본에서 익숙하게 맡던 냄새. 나무 향기가 은은해서 기분 좋아지고, 나를 반기는 관장님의 백발에 경계심이 풀어진다. 64살이라고 하신다. 흰머리와 주름살만 그럼직할 뿐, 죽도를 한번 쥐면 태산처럼 무겁다.
 94년에 생겼다는데, 아마 그때는 주변이 술집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을 게다. 샤워실은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지고, 탈의실 구석에는 먼지가 뭉쳐 다닌다. 퇴락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궁상맞거나 보기 싫지 않은 것은, 처음에 맡았던 나무 냄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저녁 아홉 시. 이제 집에 갈 시간이 되면, 나무 냄새는 흥건한 땀냄새로 바뀐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냄새도, 여기서는 모두 그런대로 나쁘지 않다. 
 낮에는 동네에 있는 공립도서관에서 책을 빌린다. 여기도 10대 아니면 40,50대다. 20,30대는 아마 공부를 하거나 직장에 가서 바쁘리라. 요즘은 이렇게 변두리에서 느리게 산다. 이것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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