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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Apr 04. 2016

죽은 사람은 너무 빨리 잊힌다

 죽은 사람은 너무 빨리 잊혀진다. '너무' 빠르다는 개념이 의아할 수 있다. god의 '보통날'처럼 잊었다는 기억조차 잊었다면, 너무 빨리 잊혀졌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주말의 환승역은 교차하는 사람들로 정신없다. 그 와중에 어디서 많이 본 남자와 정면에서 마주친다. 그와 너무 닮아서 순간 그인가 싶었다. 너무 빤히 보았을까, 그 남자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짧은 순간, 그가 이 세상에 더이상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으므로, 아무리 닮아도 그일 수는 없었다. 그는 20대 중반에 희귀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순하고 똑똑하고 부지런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썼던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는 'blank'였다.
 몇주 전 양고기에 칭따오를 마시던 술자리에서, 그녀 이야기가 나왔다. 놀랍게도 나는, 그녀가 죽고 없다는 걸 잊고 있었다. 정확히는 외면하고 있었다. 그녀는 30대에 재혼남과 결혼했다. 동업을 했던 남편은, 그 사업 때문에 만난 여자와 바람이 났다. 당연히 이혼하고 사업은 쪼개졌다. 우울증을 앓던 끝에 살던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지금도 그녀의 번호를 지우지 못했다. 한동안 카카오톡 프사는 계속 남아서, 고장난 시계처럼 멈춰 있었다. 그녀가 떠난 뒤에도, 남편은 새로 만난 그 여성과 재재혼해서 잘 산다.
자살한 순간부터, 그녀의 삶은 '비극'으로 정리되었다. 비극은 이미 막을 내렸고, 새로 막을 연 것은 행복한 재혼부부의 삶 뿐이다. 막을 내린 순간부터 잊혀지기 시작한다.
 죽은 사람이 잊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재재혼한 그녀 남편과 술잔을 기울여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녀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어느새 보통날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 밤에는 잊혀진 그와 그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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