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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Jul 10. 2017

또 홍상수의 영화다.

영화 '그 후(2017)' 감상평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아니, 영화란 무엇일까. 영화 보는 것, 본 영화에 대한 감상을 쓰는 것, 남이 쓴 영화평을 읽는 것을 즐거이 하는 필자도 좀처럼 던지지 않는 질문이다. 

  그런데 유독 이 감독의 영화를 볼 때에만 이 물음이 생긴다. 홍상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그 후(The Day After, 2017)'는, 제목 그대로 어떤 사건 이후의 일들을 담았다. 그 어떤 사건이란 설레는 첫 만남이고, 열렬한 사랑이고, 찢어질 듯 아픈 이별이었다. 한 사랑이 끝난 뒤의 일들인데, 그 사랑이 불륜이라는 점이 조금 특이하다.

  불륜 자체는 참신한 소재가 아니다. (아마 감독 홍상수와 배우 김민희에게도 그럴 것이다) 홍상수 영화가 늘 그렇듯 남자 주인공은 늙었고, 그가 구애하는 여자는 항상 그보다 어리며, 남자는 적당한 사회적 지위가 있지만 찌질하고 너절한 성욕을 드러내고, 한 번 이상 여자(들)에게 개망신을 당한다. 요약하고 보니 수컷 대부분의 삶과도 같다.


  그러나 ‘그 후’는 홍상수의 전작들에 비해 가장 이해하기 쉽고, 가장 완성되어 보인다. 

  홍상수 영화를 본 직후에 필자는, 공통적으로 어떤 ‘착시 현상’을 접한다. 예를 들어 홍상수 영화 속 술자리를 볼 때면 그것은 실제 술자리로 보인다. 다큐멘터리 같아 보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큐멘터리를 볼 때는 그것이 다큐멘터리라는 자각을 하고 본다. 그러나 홍상수 영화 속 술자리를 볼 때면 그것이 영화 또는 다큐멘터리라는 자각 없이, 실제 벌어지는 술자리를 옆에서 구경하고 있는 착각이 든다. 3D 영화 아바타(Avatar, 2009), 그래비티(Gravity, 2013)를 능가하는 현장감이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본 직후 극장을 나서면,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으로 보인다. 그 풍경이 길거리이든 지하철이든 건물 계단이든, 무엇인지도 상관없다. 영화가 너무 실제 같아서, 실제가 너무 영화 같아 보이는 ‘착시 현상’이다. 


  그렇다면 왜 홍상수 영화를 본 뒤에만 이런 착각을 할까. 추측건대 다른 영화와는 달리 오직 홍상수의 영화만이 우리의 삶이 가진 색채를 조금씩이나마 모두 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삶의 한 단면이 아닌, 삶이 가진 다층면을 담아 하나의 새로운 ‘우주’를 영화 속에 창조하는 것이다. 

  ‘그 후’ 역시 찌질한 불륜남의 권선징악 이야기로도, 비겁하게나마 일상을 지킨 한 남자의 이야기로도, 혼자 총총히 걸어가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이처럼 홍상수 영화는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으며, 그래서 알쏭달쏭하고 그래서 더 우리의 삶 같다. 


  홍상수 영화는 몇 편을 보아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고,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도 헷갈리며, 그저 물음만이 머릿속을 맴돈다. 제대로 알 수 없고 안다고 해도 다 안 것 같지 않은 그 무엇. 그것이 삶 그 자체이고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실제 삶과 대체되어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 것 아닐까. 


  좋은 영화가 무엇인지, 영화가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다만 영화를 현실의 복제품으로서 잠시 현실을 잊게 했다가 마침내는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홍상수의 영화만 한 것이 없으며 ‘그 후’만 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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