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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Aug 15. 2017

죽음을 기억하라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 감상평.

 본 영화 또 보는 것을 싫어한다. 아무리 재미있고 감동적인 영화라도 말이다. 그런데 유독 이 영화만 네 번이나 봤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 2007)다.

 왜일까. 왜 여러 번을 보아도 질리지 않을까. 우선 본 영화를 또 보는 게 싫은 이유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한번 본 영화를 보다 보면, 주요 장면이 시작하는 어귀부터 이미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한마디로 길목마다 스포일러를 당하는 셈이다. 스포일러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영화는 한번 보고 나도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른다. 몇 달 뒤면 내용을 까먹는다. 세 번째 보고 나서야 왜 제목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인지 이해가 되었다. 살인과 추격전, 다시 또 도망, 다시 또 살인이 반복되는데, 대부분의 살인이 느닷없으면서 긴박하고, 또 영화의 마지막은 엉뚱하면서 철학적이다. 이야기 구성이 변칙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워서, 기억에 잘 남지 않고 남는다 하더라도 '이게 결말이 어떻게 되더라?' 하면서 처음 본 것처럼 본다.

 두 번째는 소름 돋는 연기다. 극 중 '안톤 쉬거'라는 냉혹한 킬러 역할을 맡은 하비에르 바르뎀 때문에 봐도 봐도 재미있다. 하비에르 바르뎀이라는 이름도 낯선 이 스페인 배우는, 스페인에서는 안성기 급의 국민배우다. 바람둥이에서 안락사를 원하는 장애인까지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는 그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탔는데, 이 정도 상으로도 부족할 정도.

 세 번째는 감독(코엔 형제)의 연출이다. 놀랍게도 이 영화에는 BGM이 없다. 어떠한 음악도 없이 긴박한 서스펜스를 만들어 낸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연출로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화면의 구도와 색감은 에드워드 호퍼의 유화를 연상케 하는 매력이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안톤 쉬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 킬러는 영화 속에서는 조연이지만, 사실상 이 영화의 톤, 스릴러, 스토리를 모두 이끄는 존재다. 이 킬러가 없이는 영화가 이 정도로 혼란스러워지지 않는다. 그는 아무나 죽이고, 아무 때나 죽이며, 일단 죽이기로 했다면 끝까지 찾아가서 죽인다.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 그렇다. 저승사자다. 죽음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죽음 그 자체를 현신한다. 우리들은 모두 죽고, 어느 때나 죽을 수 있으며, 결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는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피해자들에게 마지막 자비로서 동전을 내민다. 어느 면이 나올지 맞추면 살려준다. '우연함'이 그의 인생철학이자 삶의 준칙이며, 스스로도 우연한 행운과 불행 모두를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것이 자신의 피와 뼈를 가져갈지라도.

 안톤 시거가 있음으로써, 이 영화는 동물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암사자는 무리를 이루어 사슴 떼를 쫓는다. 사슴이 잡힐지 말지, 어떤 사슴이 잡힐지는 달리는 사자도, 도망가는 사슴도, 촬영자도 시청자도 알 수 없다. 작은 우연이 생과 사를 결정할 것이다. 사자가 굶어 죽거나, 사슴이 잡혀 죽거나 오직 죽음만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거듭해서 이 영화를 꺼내어 보는 이유는, 우리 삶에도 죽음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고, 동물 다큐를 보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삶과 동떨어진 듯 보이지만 불현듯 나타나는 그것, 죽음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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