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전거에 빠진 이유
앞으로 나아가는 한 넘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자전거의 윤리다.
과학으로는 원심력과 구심력, 자이로 효과 등으로 설명되지만, 와 닿지 않는다. 타 보면 안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으려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멈추는 순간 한쪽 발을 짚어 자전거를 지탱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자전거는 관성을 잃고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넘어진다.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사람도 여러 번 겪어 보면 몸으로 깨닫는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페달을 밟아야만 한다. 이것이 자전거의 두 번째 윤리다.
자전거自轉車를 한자로 풀이하면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라는 뜻이다. 여기서의 스스로自는 자전거 스스로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다. 그 앞에 주어 ‘사람’이 빠져 있다.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는 수레다. 자전거에 탄 사람이 페달을 움직여야만 자전거가 움직인다. 탑승자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다른 누구의 힘을 빌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른 동력을 갖다 쓴다면 이미 자전거가 아니다. 때로 자전自轉은 자족自足으로 읽힌다.
오르막길을 갔다면 반드시 내리막길을 가야 하고, 내리막길을 갔다면 오르막길을 가기 마련이다. 이것이 자전거의 세 번째 윤리다.
자전거 타고 떠난 길에서 다시 돌아오기까지의 길을 이어 붙이자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정확히 일치한다. 이건 물리학도 아니고 간단한 수학이다. 힘들게 올라간 만큼 편하게 내려오고, 신나게 내려간 만큼 끙끙대며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이 명징한 수학이 오히려 탑승자를 자유롭게 한다. 불행과 행복이 정확히 겹치기 때문에, 행복에 자만할 필요도 불행에 절망할 필요도 없다.
이 세 가지 윤리 앞에는 어떠한 잔꾀도 의미가 없으므로, 자전거를 타는 동안에는 잡생각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오로지 앞으로 달리고, 페달을 밟고, 오르막길을 오르고 오른 만큼 내려갈 일이 있을 뿐이다. 이 세 가지 윤리에 기대어 몇 시간을 달리다 보면 자동차와 이륜차의 편리함이 간절해진다.
그러나 이 불편이 매력이고, 이 단순함이 복잡한 삶을 간신히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