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중 Oct 15. 2017

내 어린 날의 치아

2017. 10. 15.

  이빨이 썩어 치과에 갔다. 양치에 치실까지 하는데도 이빨이 썩는다. 음식물이 자주 껴 특별히 관리하는 치아가 썩었고, 이미 충치 치료를 하고 씌운 이빨도 썩었다고 한다. 또다시 썩은 이빨은 이제 소생할 수 없어 신경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신경치료는 말은 거창해 보이나 신경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빨 뿌리까지 연결된 신경을 쇠꼬챙이로 긁어내는데, 이것이 어째 치료인지 놀랍다. 나는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입을 최대한으로 벌리고 내 가장 연한 살을 드러냈다. 치료받는 내내 내 이빨의 취약함에 분노했다.

  또다시 썩은 그 이빨은,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치과에 가게 한 놈이다. 어리고 어리석었던 나는 이빨이 썩어 아프고 곪을 때까지 참고 참다가 치과에 갔다. 충치는 참는다고 낫는 병이 아니고,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이었다. 이빨이 썩으면 그만큼을 갉아내야 하고, 뿌리까지 썩었다면 뿌리까지 갉아내야 했다. 실제로도 불치병이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가장 무서운 병이었다.

  신경치료하기 전에 잇몸에 큰 바늘을 찔러넣어 그 부분을 마취시킨다. 처음에만 뻐근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감각이 사라진다. 입술까지 감각이 없어 이게 내 것인가 싶다. 그리고 마취되어 아무런 느낌이 없는 신경을 긁어내는 것이다. 치료가 끝나고 마취가 풀리면, 그제서야 욱신거린다. 이제야 내 몸뚱이같다. 그렇다면, 고통은 이게 내 일부임을 확인하는 과정일 것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 것 같던 사람이 떨어져 나갈 때 아팠던가. 부은 볼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썩은 부분이 적으면 쇠 또는 플라스틱으로 적당히 때우지만, 썩은 부분이 크면 새로 이빨 모양의 쇠 껍데기를 씌워야 한다. 쇠 껍데기는 가장 변치 않는 금金으로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를 크라운(Crown)이라 부른다. 왕관을 쓰는 게 이토록 어렵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나는 울면서 치과치료를 받고 그 이빨 위에 금을 씌웠다. 내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올지 모르는 고통을 마주한다는 것은, 어린 나에게 공포스러운 일이었다. 지금도 식은땀 나는 일이지만.

  두번 썩은 이빨을 치료하기 위해, 15년도 넘은 크라운을 벗겨냈다. 드러난 이빨은 덜 자라서, 주변의 다른 어금니보다 작았다. 나는 그것이 안쓰러웠다. 내 연약하고 어리석었던 날처럼, 그 어금니는 이웃의 다른 이빨보다 작고 여기저기 구멍 났으며 낯선 금속으로 메워져 있었다. 

  다시 크라운을 씌우기까지, 나는 다음 주말을 기다려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전거의 윤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