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라는 하찮은 매체에 대하여
요즈음 몸으로 산다. 하루 중 쓰는 글자는 모두 업무용 이메일에 쓰인다. 퇴근하고 나면 검도장에 간다. 이틀 뒤가 검도 승단 시험이다. 검도에 가지 않는 때에도 머리 한쪽은 검도 동작을 생각한다. 검도장에 가면 걷는 법부터 다시 배운다. 좀 더 정확한 동작으로, 더 빠르게 상대를 향해 나아가려 노력한다. 했던 동작을 다시 반복하고, 사범님의 지적을 듣고 다시 해본다. 큰 기합을 지르는 것도 중요하다. 발을 절뚝이며 집에 돌아오면 씻고 눕는다. 곧 잠이 오고, 어느새 출근시간이다.
출퇴근 중에도 책 보다 스마트폰을 본다. 이렇다 보니 일상에 글이 들어갈 틈이 없다. 글은 얼마나 하찮은가. 종이에 쓰인 글은 아무리 명문이라도 2차원이다. 독자가 굳이 시선을 두고 집중하여 글자를 읽어야만 그 의미가 독자에게 다가온다. 글자는 요즘 같은 유튜브 시대에 하찮고 수동적인 매체로 남는다. 한 권의 책을 써도 글자는 3차원이 되지 못하니, 외면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하지 못한 말들이 남는다. 오늘 본 것들, 처음 가본 곳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 그 움직임을 기록하다 보면 마음 한켠에 글이 고인다. 글이 한 문장, 이어 한 단락이 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린다. 일상을 산다. 그러다 이내 토해내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가 될 때,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가끔 내 글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드문 경우에, 마침내 글자는 의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