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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Apr 15. 2018

다시 쓰는 미국 건국신화

영화 “몬태나(2017)” 감상평

영화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D.H.로렌스의 말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The essential American soul is hard, isolate, stoic, and a killer. It has never yet melted.”

“본질적인 미국의 정신은 강하고, 고립되어 있고, 금욕적이고, 살인자이다. 이것은 결코 누그러지지 않았다.”


 그 다음 이어지는 두 씬은 각각 남자주인공(조셉 대위)와 여자주인공(퀘이드 부인)을 소개해주는데, 이 세 씬이 하나의 오프닝 시퀀스를 이룬다. 그리고 이 시퀀스가 다소 모호해 보이는 영화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이어지는 씬은 서부개척시대의 미국, 어느 외딴 통나무집이다. 백인 부부와 자녀 셋이 한 가정을 이루고, 퀘이드 부인은 갓난쟁이를 강보에 싸서 안고있다. 이어서 얼굴이 붉은 분칠을 한 인디언 한 무리가 이 외딴 집을 습격한다. 단지 말 한마리를 강탈하기 위해서. 남편은 장총을 들고 저항하지만 이내 살해당하고 인디언 부족 풍습에 따라 머릿가죽이 벗겨진다. 인디언들은 대여섯살 먹은 아들과 딸도 쏴죽인다. 심지어 강보에 싸인 갓난아이도 쏜다. 퀘이드 부인은 그것도 모르고 아기를 안아들고 도망친다. 결국 퀘이드 부인만 도망에 성공하고, 부인은 혼자 남아 울부짖는다. 이게 여주인공의 등장씬이다. 관객은 인디언들에게 격한 분노를 느낀다.

 곧바로 이어지는 씬은 반대다. 인디언 가족을 미 육군(백인)들이 조롱한다. 올가미를 들고 소몰이 하듯 인디언 남편을 조롱하고 흙바닥에 짐짝처럼 끌고간다. 인디언 부인과 딸이 울부짖는 동안, 육군 조셉 대위는 망부석처럼 이 광경을 보고만 있는다. 이제 관객은 백인들의 잔혹성에 몸서리친다.


  같은 시간대의 두 장면은 일견 무관한 두 사건처럼 보이나, 넓게 보면 인과관계로 이어져 있다. 백인들이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백인들은 인디언을 죽이고 땅을 차지했다. 이에 저항하는 인디언이 없을 리 없다. 그렇게 백인과 인디언은 서로를 죽고 죽이며 살육의 나선을 이어간다. 이는 제주 4.3사건과 6.25전쟁에서 서로 죽고 죽였던 남북의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그 다음 이야기는 오히려 익숙하다. 수많은 인디언들을 죽이고, 자기 동료들이 인디언에게 죽으면서 인디언에 대한 증오만 남은 조셉 대위가 있다. 근데 전역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맡은 임무가 좀 이상하다. 과거 미 육군을 최후까지 괴롭혔던 인디언 부족의 추장을 “무사히 살려서” 그의 고향까지 호송하라는 임무다. 추장은 그의 가족들과 함께 사로잡혀 감옥살이 7년 째, 늙고 암에 걸려 죽음을 앞뒀다. 추장이 원하는 것은 고향의 인디언 성지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것. 추장의 청원을 미 대통령이 승인하고, 조셉 대위에게 호송임무가 하달되었다. 그리고 그 임무중에 일가족이 살해당하고 혼자 살아남은 퀘이드 부인이 동행한다. 


 이 영화는 능력있는 군 장교가 (군인이 맡는 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인도적인 임무를 맡아 팀을 꾸리고, 긴 여정을 떠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어디서 들어봤다면 당신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을 본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뻔히 예상된다. 인디언을 증오하는 조셉 대위와 퀘이드 부인이 인디언 추장 가족과 여행을 떠나는 것이니까. 백인과 인디언 인물들은 휴머니즘이라는 이념 아래 화해할 것이다.


 그러니 영화 전반적으로 새로움이 덜하고, 우울하고 잔인한 내용임에도 연출이 건조하여 다소 지루하다. 그럼에도 관객을 끝까지 궁금하게 하는 것은 화해할 것인지가 아니라 “어떻게” 화해할 것인지다.

 

 뻔한 내용을 뻔하지 않게 풀려는 감독의 노력이 보이고, 조셉 대위를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과 퀘이드 부인을 연기한 로자먼드 파이크의 연기는 안정적이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인디언 추장 역할의 웨스 스투디도 호연을 펼쳤다.


 하지만 전형적인 캐릭터가 아쉽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인디언은 항상 현자 또는 악당이었는데,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조셉 대위가 매력적인 캐릭터이나, 관객이 감정이입하기는 어렵다.


 이제 첫 씬의 그 문장으로 돌아가보자. 강함, 고립적, 금욕적, 살인자가 모두 이해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총기난사 사건이 왜 그렇게 많은지, 그럼에도 왜 총기를 규제하지 않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왜 서북청년단이 제주의 민간인들을 학살했는지, 왜 태극기 부대와 자유한국당이 빨갱이를 그토록 잊지 못하는지도, 이 영화를 보면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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