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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Jun 02. 2018

수수께끼 같은 영화

영화, 버닝(2018) 감상

  이 영화에 대한 평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Burning, 2018)"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의아했고,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 감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영화가 가지는 힘이 있고, 그 힘 때문에 나는 계속 궁금해했다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어서 재미없는 영화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어서 궁금하고 궁금해서 계속 몰입하게 되는 힘이 있었다.
  영화에는 딱 3명이 나온다. 주인공 종수(유아인 분), 여주인공 해미(전종서 분),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 분)이다. 종수는 20대의, 돈 없고 지질하고 알바로 연명하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그가 택배 알바를 하던 중 내레이터 모델 알바를 하던 초등학교 동창 해미를 만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몇 달 뒤 해미는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오고, 그곳에서 친해진 벤을 종수에게 소개해 준다. 벤은 외국에서 오래 살았는지 한국어가 서툴고, 돈이 많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외제차를 몰고, 항상 여유 있고 매너 좋은 청년이다. 벤의 등장에서부터 영화는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한다.
  벤은 종수에게 묻는다 "무슨 소설 써요?" 종수는 답한다. "저는 뭐를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한텐 세상이 수수께끼 같거든요." 이 영화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관객은 주인공 종수의 시점에서 이 영화를 본다. 그런데 종수는 영화 내내 수동적이고, 갑자기 누군가를 맞닥뜨리고, 그 맞닥뜨린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증오한다. 종수는 세상의 파도에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는 나약한 조각배 같다. 더 답답한 것은, 이 파도가 어디에서 오는지, 나를 삼킬 만큼 큰 파도인지, 만약 나를 삼킨다면 왜 나를 삼키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불가해하고 알 수 없는 시련처럼, 벤은 종수에게 다가온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벤을 연기한 스티븐 연인데, 그는 수수께끼 같은 남자 벤을 훌륭히 연기했다. 착한 것도 같고 나쁜 것도 같고, 게다가 그 모호함이 현실적이고 한 번쯤 실제로 본 사람 같아 더욱 실감 났다.
  이제 영화의 장점은 모두 나열했다. 영화의 단점은 이야기가 모호하다는 것.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는 채로 답답하게 극장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단점은 이창동 감독이 20대 청춘을 바라보는 방식이 너무 '낡았다'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그의 데뷔작 "초록물고기(1997)"의 방식대로 젊은이를 본다. 그러나 시간은 20년이 흘렀다. 몇 년 전만 해도 20대였던 나는 이창동이 그리는 20대를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다소 비현실적이고 문학적인 연출이랄까. 
  하지만 세상의 파도를 맞으며 헤매는 것이 청춘이라면, 청춘의 은유로서 이 영화를 받아들일 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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