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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중 Jun 28. 2018

사람이 매력적인 영화

영화 '변산(2018)' 감상평.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언제나 "사람"이 중심이었다. 유쾌하고 진솔한 사람들이 가득한. 다소 투박하고 서툴지만 친근한 영화. 한때 '사도(2014)', '동주(2015)'로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가 영화 "변산(Sunset in My Hometwon,2018)"으로 돌아왔다.

  "변산"은 감독의 전작 중 "라디오스타(2006)" 또는 "왕의 남자(2005)"와 비슷하다. 주인공 학수(박정민 분)를 내내 곁에서 도와주는 캐릭터가 있고(라디오스타), 학수의 직업인 래퍼도 따지고 보면 광대다(왕의 남자).

  영화의 만듦새는 다소 촌스럽다. 단순히 촌동네를 배경으로 해서 촌스러운 것이 아니라, 연출 기법 자체가 촌스럽다.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다소 전형적이고, 이야기의 큰 틀은 뻔하다.  감독은 의도한 촌스러움이라 했지만, 연출기법까지 촌스러울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감독의 최대 장기, 인간미와 재미는 이번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특히 주인공을 맡은 박정민, 주인공 아버지 역할의 장항선, 주인공의 동창이자 동네 건달인 용대 역할을 맡은 고준은 모두 호연을 펼쳤다. 세 캐릭터 모두 매력적이고, 주변에서 볼 법한 연기를 보여주어 쉽게 공감이 간다.

  특히 박정민의 연기는 다시 한번 언급할 필요가 있다. 박정민의 연기 하나로 다소 비현실적인 이야기 전개가 현실에 안착했다. 그는 데뷔작 파수꾼(Bleak Night, 2010)에서부터 범상치 않았다. 실제 고등학생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나이 때 청소년의 지질함과 덜 익은 남성성과 비겁함, 무뚝뚝함을 훌륭히 연기해서, 뇌리에 깊이 박혔더랬다. 그런 그가 이제는 당당히 주연을 꿰찼다. 더 큰 배우가 될 가능성이 많다.

  웃음을 적절히 안배한 연출도 좋았다. 영화는 123분, 별 내용도 없는 영화가 이렇게나 길다. 하지만 중간중간 의외의 장소에서 나오는 유머가 관객을 웃기고, 청량한 음료처럼 관객의 입맛을 리셋시키고 다시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슬프다가 웃기고, 화내다가 웃기고, 감동적이다가 갑자기 그 감동을 깨고 다시 웃긴다.

 캐릭터에 대해 아쉬운 소리를 하자면, 감독이 여성 캐릭터를 연출하는 방식은 실망스럽다. 여주인공 선미(김고은 분)는 이 영화에서 너무 도구적으로 쓰인다. 선미가 학수를 학창 시절 짝사랑하는 것 까지는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년이 지나도록 학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부분이나, 느닷없이 학수의 삶에 뛰어들어 그때그때 영화 진행상 필요할 때마다 옆에서 참견을 늘어놓는 점은 비현실적일뿐더러, 선미가 마치 학수의 '각성'을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처럼 보이게 한다.

  나머지 여성 캐릭터인 미경(신현빈 분)은 더 이해하기 힘들다. 선미와 마찬가지로 학수의 고향 친구이고, 학수의 짝사랑 대상이었다. 영화 등장 시점에서는 부안군 기자와 사귀다가, 학수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기자와 헤어지고, 영화 후반에는 갑자기 동창 용대와 사랑에 빠진다. 이 알 수 없는 애정 패턴은 무엇인지...

  이준익 감독의 영화들 대부분이 남성 캐릭터 위주의 서사였고, 감독 자신이 남자다 보니 여성 캐릭터를 잘 모르는 것이 이해는 간다. 하지만 영화는 혼자 만드는 예술이 아니고, 여자를 모르면 여자 스텝에게 물으면 된다. 영화에 여성이 달랑 2명 나오는데, 한 명은 주인공을 10년째 짝사랑하고, 한 명은 관객에게 어떤 설명도 없이 갑자기 남자 친구를 바꾼다. "여자는 성녀 아니면 창녀"라는 중년 남성의 통념이 섞인 것이 아닌가 우려한다. 감독의 역량 부족으로밖에 볼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캐릭터다. 조연 하나하나에게 이야기가 있고, 생동감 있게 영화 안에서 활약한다. 여성 캐릭터도 자신의 개성이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내뱉는다. 이는 아마 감독의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리라. 우리 관객도 저 영화처럼, 우리 삶 속에서 마음껏 날뛰었으면 한다.


** 영화계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청년 이야기를 청년 감독이 다루지 않고 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처럼, 이준익 역시 청춘을 다루는 방식이 낡았다. 제작사는 청춘 영화라고 홍보하지만, 청춘 영화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이준익 스스로도 청춘 영화는 아니라고 밝혔다). 청춘 영화는 최소한 30대 감독이 만들었으면... 충무로의 새로운 바람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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